"죽지 않기 위해 우리(브라더)는 변신하고, 또 변신해야만 했습니다.
한국인에게 '브라더(Brother)'라는 이름은 향수로 남아있다. 1960년대에 브라더는 '부라더 미싱'이라는 재봉틀로 시장을 석권했다. 부라더 미싱은 지금도 판매되고 있다. 예전의 뭉툭하고 볼품에 신경쓰지 않는 미싱과 달리 이제는 트렌드에 맞춰 디자인이 깔끔하다.
최근 헬로키티 캐릭터 재봉기 GS2786K(사진)가 여기에 해당한다. 소비자 가격 42만원.
일본 나고야 브라더 본사에서 만난 도시카즈 고이케(사진) 회장은 브라더 역사를 '도전과 응전'이라고 말했다.
1908년 재봉틀 수리업체로 출발한 브라더는 1932년 재봉틀의 핵심 기술인 셔틀훅(실을 감는 기계)을 개발하며 직접 재봉틀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회사 이름이 '브라더'로 정해진 데는 사연이 있다.
"창업주인 야스이 마사요시는 브랜드를 '시스터(sister)'로 하려 했습니다. 재봉틀 사용자 대부분이 여성이기 때문에 당연한 생각이었지요. 그런데 '시스터'는 이미 다른 재봉틀업체에서 등록한 상태였습니다. 하는 수 없이 '브라더'로 등록했습니다."
경쟁사 시스터는 진작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렇지만 브라더는 반세기 동안 승승장구하며 절대강자로 군림했다. 이미 1950년대 미국과 유럽 지역에 지사와 공장을 건립하며, 일본 기업 중에서도 글로벌 시장 개척에 가장 앞장선 기업으로 기록됐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부터 매출이 급격히 줄며 브라더는 위기에 빠졌다. 핵가족화가 확산되고 재봉 서비스를 해주는 세탁소가 늘면서 재봉틀에 대한 수요 자체가 줄었기 때문이다. 브라더는 당시 급성장하던 타자기 시장에 주목했다.
"재봉틀과 타자기는 물체에 충격을 주는 기술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유사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브라더는 1984년 LA올림픽 공식 공급업체로 지정되며 다시금 세계 최고 타자기업체로 이름을 알리는 데 성공했다. 이어 브라더는 미국 시장 공략을 위한 비장의 무기인 팩시밀리 개발에도 성공했다. 당시 600달러를 호가하던 경쟁사와 달리 브라더는 400달러 수준의 저가형 모델인 '팩스600'으로 미국 시장을 휩쓸었다. 브라더는 혁신을 멈추지 않았다.
"타자기와 팩스의 성공 덕에 트렌드를 읽는 눈을 키워 재빨리 프린터 시장으로 눈을 돌려 세계 최초로 고속 도트-매트릭스 프린터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런 노력의 결과 세계시장의 11%를 차지한 브라더는 프린터, 스캐너 등 IT 복합기 전문 제조업체로 휴렛패커드(40%), 캐논(19%), 삼성전자(16%) 등과 자웅을 겨루고 있다. 매출도 급성장해 지난해 말 기준 5160억엔(약 5조8000억원)을 기록했다. 2015년까지 7500억엔(약 8조4000억원) 달성이 목표다.
도시카즈 회장은 "여전히 변화를 위한 노력을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글로벌 강자들이 우글거리는 데다 다른 경쟁사들과 달리 프린터가 주력 상품인 브라더는 경쟁우위 확보를 위해 더욱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동시에 브라더는 구글글라스 등장 이후 각광받고 있는 헤드마운티드 디스플레이(HMD) 개발에도 성공하며 신시장을 적극 개척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절대우위를 보유한 재봉틀도 포기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매출액으로는 전체 중 7%에 불과하지만 여전히 상당 규모에 달하는 산업용 재봉틀 시장을 캐시카우로 이어간다는 계산이다. 대신 제품은 IT 기술을 접목해 첨단화했다.
LED 포인터와 레이저 기술을 재봉틀에 적용해 정밀한 재봉을 가능하게 했다. 브라더는 한국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도시카즈 회장은 "재봉틀 업체로서 이미지가 너무 강해 IT기기 업체로서 인지도를 쌓는 데 방해가 되고 있다"면서도 "한국인의 인식이 개서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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