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연구소=김승범 기자] 한국의 코스닥은 미국 나스닥을 본 뜬 시장이다. 'Korea Securities Dealers Automated Quotation'의 앞글자를 딴 코스닥(KOADAQ)은 1996년 7월 1일 증권업협회가 미국 나스닥을 벤치마킹해 개설했다. 코스닥 지수도 이날을 기준으로 계산한다. 유가증권시장보다는 상장 기준이 완화된 편이어서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1996년 개설 이후 코스닥 지수의 흐름을 보면 부침이 만만치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미국 나스닥이 1972년 설립 이후 꾸준하게 우상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과 달리 우리의 코스닥은 2000년 3월 10일 2,925를 찍은 이래 단 한번도 2,000은 물론이고 1,000을 찍은 적이 없다. 7일 현재 코스닥 지수는 876.96이다.
1996년 개설 이후 코스닥 지수 추이. 자료:한화증권.
1996년 개설된 코스닥은 곧바로 불어닥친 닷컴붐으로 덩치를 키웠고 2000년 3월 2,925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닷컴버블이 꺼지면서 500선으로 추락했고,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 10월에는 260까지 주저 앉았다. 이후에도 코스닥은 500~600의 박스권에서 움직이다 올해들어 800을 돌파하며 주목받고 있다. 그럼에도 코스피 시장과의 격차는 커지고 있다. 글로벌 증시 호조와 기업 실적이 견인한 강세장에서 코스닥은 사실상 소외돼 있는 셈이다.
물론 양적 성장이 없지는 않았다. 출범 첫해 7조 6,000억원이던 코스닥 시장의 시가총액은 7일 현재 390조원으로 22년동안 5.1배 불어났다. 코스닥 상장 기업수도 331개에서 1,231개사로 3.7배 늘었다. 거래대금은 설립 당시 20억원이었지만 이제는 2조원을 넘어섰다.
그럼에도 코스닥이 나스닥처럼 되기에는 한참 멀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선, '코스닥=마이너 리그. 2부 리그'라는 인식이 팽배해 스타 기업이나 대형기업이 보이지 않는다. 최근 들어 카카오, 셀트리온이 코스피로 이전했고 멀리는 NAVER도 코스닥에서 덩치를 키우자 코스피로 옮겼다. 이제 코스닥에는 미국 나스닥의 페이스북, 아마존, 구글, 테슬라 같은 스타 기업이 남아있지 않다. 미국 나스닥의 경우 '나스닥 기업= 고급 하이테크 우량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는 것과 딴판이다.
테마주 위주로 시장이 전개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주가가 급등락한 정치인 테마주들은 대부분 코스닥 종목이었다. 기업 실적에 근거해 저평가 우량주를 장기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단기간에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자자들이 많은 것이다.
코스닥에서 테마주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1999년 8월 코스닥에 상장된 새롬기술(현 솔본)은 인터넷 전화를 주력사업으로 인터넷 테마주로 주목받으며 주가가 6개월만에 150배 이상 폭등했다. 그렇지만 새롬기술을 비롯한 이들 테마주는 미국 닷컴버블이 꺼지면서 동반 몰락했다. 이후 코스닥 시장은 투자 심리가 위축되면서 3~4년간 암흑기를 맞았다.
▶ 개인 투자자 비중 90%, 정치인 테마주 기승
정치인 테마주도 코스닥 시장의 특징이다. 코스닥에 본격적으로 테마주가 기승을 부린 것은 인터넷이 보급된 16대 대선부터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충청권 수도 이전'을 공약으로 계룡건설, 대아건설, 한라공조, 영보화학 등 충청권에 연고를 둔 코스닥 기업들이 주목 받았다. 2007년 17대 대선 기간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운하 공약에 따라 중소 건설사들이 급등했다. 이른바 '대운하 테마주'로 삼호개발, 이화공영, 동신건설이 수중 공사 면허가 있다는 이유로 급등했다. 절체 거푸집을 생산하는 삼목정공, 낙동강과 한강을 연결하려면 소백산맥을 뚤어야 한다는 이유로 묵악터널 공사를 했던 울트라 건설이 테마주를 탔다. 18, 19대 총선이 함께 치러진 2012년에는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등 대선 후보 중심의 테마주가 급등했다. 당초 코스닥이 표방했던 '한국판 나스닥'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
코스닥이 이런 사정을 갖게 된 것은 외국인과 기관이 비중이 지나치게 낮은 것과 관련이 있다. 지난해말 기준 코스닥 시장에서 기관과 외국인 거래 비중은 각각 4%, 6%다. 나머지 90%는 개인 투자자들이었다. 쉽게 말해 대부분의 외국인이나 기관은 코스닥 기업에 무관심하고 투자할 의향도 갖고 있지 않다. 개인 투자자들이 시장의 대부분이다보니 시장이 소문에 휩쓸리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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