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9 12:00
- 오사키 사다카즈 일본 금융청 금융심의회 위원(도쿄대 법학부 객원교수)
- 921만 계좌 5조2천억엔 증시 유입…"세수보다 투자활성화가 우선"
지난 4일 일본 우정그룹(Japan Post Holdings)의 3개사가 기업공개(IPO)에 성공하자 도쿄 증권가는 한층 고무됐다. 1987년 통신회사 NTT에 이어 28년 만에 대형 상장이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다. 특히 국민 만능통장 '니사'(NISA·Nippon Individual Savings Account)가 우정그룹의 상장 성공을 가져온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치다 사토시 노무라증권 기획부장은 9일 "니사 계좌에서 이번에 상장한 우정그룹 3개사 주식을 많이 샀다"며 "니사 제도 도입은 저축에서 투자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 "당장 세수 줄어도 주식 투자 활성화로 경기·기업 살린다"
도쿄에서 만난 일본 정·관·학계 관계자들은 모두 니사 도입의 가장 큰 목적으로 증시 활성화를 꼽았다. 오사키 사다카즈 일본 금융청 금융심의회 위원(도쿄대 법학부 객원교수)은 "정부는 세수가 줄더라도 주식투자가 늘어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전 국민이 모두 가입할 수 있고 세수 감소액이 적어 부유층 감세 논란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니사는 일본 정부가 저축에 묶인 돈이 증시로 흘러가도록 작년에 도입한 소액투자 비과세제도를 말한다. 주식투자 인구가 늘어나 증시로 돈이 이동하면 소비와 경기가 활성화할 것으로 본 것이다.
오사키 위원은 "2013년까지 자본이득세에 대한 감세 조치로 세수는 줄어들었지만, 증시로 많은 돈이 유입됐다. 당시 부유층만 투자 수익을 거둬 논란이 일자 전 국민이 고루 이익을 얻도록 하려고 니사가 도입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증권업협회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니사 계좌는 921만 계좌로 3개월 새 4.8% 증가했다. 니사를 통한 주식투자액도 5조2천억엔으로 17.8% 늘어났다.
일본의 개인 저축액은 1천600조∼1천700조엔에 이른다. 이 중 절반 수준인 800조∼885조엔이 예·적금에 묶여 있다. 일본 정부는 니사의 투자잔고 목표치를 2020년 25조엔(약 234조원)으로 잡고 있다.
하야시 히로미 노무라 자본시장연구소 연구원은 "도입 초기엔 부자 고령자가 기존 계좌를 이전하는 게 주류였지만 지금은 20∼30대가 가입하는 흐름으로 전환했다"고 설명했다.
니사는 개인의 자산 증식뿐 아니라 우정그룹의 성공적인 상장 사례에서 보듯 기업금융 활성화에도 기여한다는 평가다. 니카미 키오시 일본 오사카 증권경제연구소장(시가대 명예교수)은 "일본에선 자원 분배 기능이 은행(대출)에서 증시(주가)로 넘어갔다"며 "정부가 증시 활성화에 적극적인 것은 기업의 성장 가능성에 대한 판단을 시장에 맡기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증시에선 기업 성장 여부가 주가로 드러나 투자자들은 좋은 기업 주식에 투자하고 부실 기업 주식을 팔아 자금을 바로 회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 증권업계에서도 니사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선 모습이다. 아키오 쯔보카라 일본 증권업협회(JADA) 홍보과장은 "정부와 업계가 협의체를 만들어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며 "2013년부터 2019년까지 니사 홍보 예산으로 매년 6억엔씩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 "일본, 니사 영구화·주니어 니사 도입 추진"…중도 인출 자유화도 필수
일본 정부는 내년에 연간 니사 투자한도를 100만엔에서 120만엔으로 상향 조정하고 세대간 자금이동을 위해 20세 미만 미성년자 대상의 주니어 니사(Junir NISA)도 도입할 예정이다. 치다 노무라증권 기획부장은 "일본의 증권사들은 고령화된 증권계좌를 어떻게 젊은 세대로 이동시킬까를 고민하고 있다"며 "주니어 니사는 고령자층에서 손자나 자식에게 자산 이동을 촉진하기 위한 것으로 일반 대중을 위한 제도"라고 말했다. 장기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10년간 한시 도입된 '니사 영구화'와 비과세 혜택 확산을 위한 '금융소득 일원화'도 추진하고 있다.
오사키 위원은 "주가가 하락하면 니사의 비과세 혜택은 의미가 없다. 정부는 비과세 혜택을 고루 누리도록 니사와 다른 금융상품 투자손익을 합산해 세금을 매기는 금융소득 일원화도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선 내년에 한국판 만능통장인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도입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근로소득 또는 사업소득이 있는 사람만 가입할 수 있고 소득의 200만원까지만 비과세된다. 또 투자 대상에 예·적금이 포함되고 일본과 달리 의무 가입 제한으로 5년간 중도 인출이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대해 오사키 위원은 "저소득층이나 젊은층을 위해 중도 인출 자유화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부유층은 보유 자산이 많아 니사를 통해 투자한 돈에서 손실이 나더라도 당장 인출 욕구가 크지 않지만, 저소득층은 돈이 필요한 상황이나 인출 욕구가 많은 데다 중도 인출 제한으로 손실이 날 경우 돈을 찾을 수 없으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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