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대학 졸업 후 의사 면허를 취득했지만, 이제 와서 보니 의미가 없었다. 떠밀려 선택한 치과대학 선택이 후회됐다. 미래가 보장된 삶은 지루했고 더 나은 스펙을 추구하다 돌아본 삶에는 가치가 결여돼 있었다. 병원을 그만두기로 하고 섬마을에서 공중보건의 생활을 하던 시절, 터닝 포인트를 만났다. 책을 읽으며 체득한 세상에 대한 통찰이 자연스레 자신이 원하는 가치 탐구로 이어졌다. 그동안 그는 그가 아닌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가 바란 건 명예도 돈도 안정도 가족도 아니었다. ‘꿈’을 쫓기로 결심하자 비로소 길이 보였다. 성과가 담보되지 않은 길 위, 그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 건 공명심이었다.
“법이 아닌 권력을 남용하는 누군가로 인해 마땅히 누려야 할 제도에서 제외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자유로운 시민은 예종하지 않으며 지도자는 두지만 주인은 두지 않는다." ('공화주의' 모리치오 비롤리 저, 2006)
비바리퍼블리카, ‘공화주의 만세’라는 뜻을 가진 기술 기반 회사가 2011년 4월 탄생했다. 공화주의에 감명을 받은 이승건 대표는 세상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힘이 기술에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동등한 가치에 기반한 토스를 출시했다. 토스앱은 공인인증서 없이 누구나 쉽고 빠른 송금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금융 서비스에 제외되는 사람이 없게 한다는 목표 아래, 대출, 카드, 보험 등 종합 금융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저소득층을 위한 ‘햇살론뱅크’, 유소년 고객(토스 카드)의 지속적인 금융 사용을 위한 ‘토스 유스 넥스트 카드’ 등도 일맥상통한다. 비바리퍼블리카는 최근 급성장하며 지난해 12월 18일 주요 증권사에 상장 입찰제안 요청서(REF)를 배포했다. 상반기 기업공개(IPO)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승건 대표는…
△1982년 서울 출생(41)△영동고·서울대 치과대학 졸업 △삼성의료원 전공의(2008) △비바리퍼블리카 창업(2011. 4) △토스 출시(2015. 2)
◆올해 연간 흑자전환 기대... 토스뱅크·증권은 흑자전환
이승건 대표는 지난해 괜찮은 실적을 냈다. 지난해 1~3분기 매출액 1조490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21.83% 증가하며 처음으로 1조원을 넘겼다. 영업손실 1847억원, 순손실 1825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영업손실은 10.46% 증가했지만 순손실은 24.40% 감소했다. 여전히 적자이지만 적자폭이 감소하고 있다. 부문별로 살펴보면 토스뱅크는 86억원, 토스증권은 35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올해는 토스뱅크와 토스증권의 실적 개선으로 연간 흑자전환을 기대하는 중이다.
지난해 12월 20일 비상장 주식거래 사이트에서 비바리퍼블리카 주가는 4만5000원으로 전일비 16.88% 상승했다. 비바리퍼블리카가 REF를 배포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덕분이었다. 이후 주가는 상승세를 타고 19일 현재 5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관련주도 동반 상승하고 있다. 지난 11일에는 비바리퍼블리카가 상장 후 기업가치가 15조원을 호가할 거라는 기대감이 번지며 이월드(토스뱅크 지분 9.99% 보유), 한화투자증권(토스뱅크 지분 9.28% 보유) 주가가 각각 11.03%, 22.59% 상승했다. 이월드의 경우 한 달 새 주가가 100% 급등했다. 지난 9일 코스피 RFP 접수 마감 후 증권사들이 낸 비바리퍼블리카의 예상 기업가치는 15조~20조원이다.
물론 핀테크 기업의 상장을 우려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같은 수익구도를 가진 상장 금융 플랫폼들의 전적이 부진한 탓이다. 그러나 타 금융 플랫폼이 성과를 못 낼 때 토스는 금융 소외계층이 없도록 문턱을 낮추고 저신용자를 위한 중금리 대출 상품, 영세 사업자 위한 토스페이 결제 수수료 혜택 등 기존 은행과 차별화하는 틈새 전략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이뤘다. 고금리 등 악재가 겹친 업황의 위기를 기회로 바꾼 이승건 대표의 결단이 만들어낸 결과다.
◆복잡한 금융 서비스를 기술로 '간편 구현' 강점
비바리퍼블리카는 국내 핀테크 기업 중 처음으로 9조1000억원의 가치를 지닌 유니콘 기업이 되었다. 2021년 2월 토스증권, 2021년 10월 토스뱅크 서비스 개시 이후 해당 연도 매출액이 100% 증가했고 본격적으로 알려진 2022년에는 52.3% 증가했다. 2020년 8월에는 엘지유플러스의 PG(Payment Gateway, 전자지급결제대행) 사업부를 인수하고 토스페이먼츠를 출범하면서 비즈니스와 기술을 결합한 가맹점 결제 시스템 분야로 서비스 영역을 확장했다.
비바리퍼블리카의 매출액 비중을 살펴보면 컨슈머 서비스(고객 금융서비스) 44%, 머천트 서비스(사업자 결제 서비스) 56%이다. 두가지 모두 최적화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데이터처리 기술 기반의 맞춤형 서비스를 지향한다.
이승건 대표는 기술이 밑단에서 제대로 받쳐준다면 복잡한 금융 서비스가 쉬워지리라 생각했다. 직관적으로 쉽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는 UX(사용자 경험)과 UI(사용자 환경) 혁신으로 가능해진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사용자 편의는 커진다. 금융서비스 편의를 위해 개발한 시스템 중 일부는 특허권으로 등록한 상태다. 또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 환경을 구축하고 금융 보안 및 토스앱 내 인증수단 보안 등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최적화 솔루션을 개발하는 등 연구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올해는 비바리퍼블리카가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할 것으로 보인다. 이승건 대표는 2021년 10월 모빌리티 플랫폼 타다 지분 60%(약 400억원)를 인수하고 지난해 12월 타다 가치를 높이기 위해 전기바이크와 킥보드를 추가했다. 그리고 각각 지쿠(전기바이크 1위)와 올룰로(킥보드 공유 플랫폼 3위)와 제휴, 모빌리티 플랫폼 협업을 이뤄나간다고 발표했다.
또 간편결제 서비스 토스페이를 해외 오프라인 결제가 가능한 42개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지난해 9월 알리페이플러스(Alipay+)와 손잡고 중국 오프라인 결제 서비스를 시작했고 말레이시아도 서비스를 개시했다. 여기에 미국, 호주 영국, 일본, 싱가포르 등 40여 개 국가를 추가해 글로벌 서비스로 발돋움한다. 이와 함께 토스뱅크는 지난 18일 수수료를 없앤 외환 서비스를 선보이며, ‘세상의 돈을 자유롭게’라는 슬로건처럼 누구나 조건 없이 평생 무료 환전 혜택을 이용하도록 했다.
◆8번 실패 끝에 토스 론칭... 수평적 조직문화로 임직원들 업무에만 집중
이승건 대표는 치과의사에서 핀테크 기업가로 변신했다. 그 사이 여덟 번의 실패를 겪었다. 실패를 통해 빨리 회복하는 법을 배웠고 그만큼 더 빨리 실패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가 계속 실패하면서도 창업에 매달린 건, 창업이 꿈을 실현하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망하겠지, 대충 시작하자"라고 시작한 사업이 토스였다. 힘을 빼니 새로운 기운이 모였다. 욕심 대신 본질에 집중하자 매출이 눈에 띄게 늘었다.
비바리퍼블리카는 다른 기업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할 때, ‘왜’에 주목했다. ‘무엇’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왜’는 자신의 비전, 가치가 있어야 하므로 그 자체로 차별화된다. 이 대표가 생각하는 가치는 비바리퍼블리카가 지향하는 방향성이 되었고 다른 기업과 다른 지점을 만들었다. 더 많은 사람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그가 만든 서비스가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 그가 한 모든 창업을 꿰뚫는 비전이다.
이승건 대표는 2020년 모든 직원에게 각각 스톡옵션 1억원을 부여해 관심을 모았다. 파격적인 행보의 기저에는 ‘불필요한 경쟁심이 아닌 협업을 통해 위대한 승리를 만들기 위함’이라는 그의 의지가 담겨 있다. 토스증권의 한 직원은 "모든 임직원들은 100% 정보 공유가 원칙이다. 정보 공유 슬랙(slack)에 법인카드 사용 내역은 물론이고 업무 내용도 100% 공유된다. 조직 문화도 완벽하게 수평적이고 업무에만 집중하도록 돼 있다. 사무실 내부에 편의점이 있고 먹거리는 물론이고 영양제, 파스, 상비약까지 구비돼 있다. 그래서 사무실 바깥으로 나가지 않고 업무에 집중하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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