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본주의. 경제 민주화를 넘어 정의로운 경제로. 장하성. 헤이북스. 2014. 9. 25.
계획경제체제의 유산. '경제개발 5개년 계획'부터 'MB 물가지수'까지
한국은 1960년대 초부터 본격적인 산업화를 시작했고, 경제 운영의 틀이 계획경제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1 5· 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군사정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경제를 운영했다. 계획경제의 시작 단계에서는 계획이 체계
적으로 설계된 것도 아니었고 목표치도 희망 섞인 과대치나 정치적 메시지의 성격이 짙었다. 하지만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군사정부는 자율적인 시장보다는 훈련된 관료와 군대식 명령 체제로 움직이는 계획경제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안고 시작했다. 모든 사
회 세력으로부터 견제를 차단하고 절대적 자율성을 확보한 군사정부는 애당초 시장의 효율성을 믿었던 것도 아니었고, 시장이란 것을 제대로 이해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자원 동원력을 가진 정부 성과를 거두었다.
자원 배분의 전권을 가진 정부는 시장의 승자를 간택할 수 있었으며, 역량이 입증되지 않는 기업이나 특정 개인에 게까지 지원과 특혜를 제공해서 성공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이렇게
30년 이상 소위 '개발 연대'가 지속되었고, 경제체제는 계획과 명령, 순응과 복종의 미덕이 자리를 잡게 된 반면에 시장의 자율성이란 혼란과 무질서, 탐욕과 이기주의라는 말과 등치되는 의식이 일반 국민들 사이에 자리 잡게 되었다. 오죽하면 2000년 즈음까지도 중고등 경제 교과서에서 경제활동의 목적을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기 위해 외환 체서'라고 규정했겠는가.
계획경제체제에서도 당연히 시장이 존재했고,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 분야에서는 시장 기능이 작동했다. 그러나 계획경제체제에서는 정부의 역할이 경제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예산을 집행하는 것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국유화와 공기업 설립을 통해 기업을 소유하고 자
원을 배분하며 가격을 통제하거나 심지어는 직접 결정했다. 따라서 계획경제 시대에도 시장이 존재하고 일부 경쟁 구조가 작동하고 있 었지만 시장경제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체제였다. 군사정권에서의 관료들은 거의 무소불위에 가까운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똑똑한'
관료들이 별로 복잡하지도 않은 산업구조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가장 잘 알 수 있었다. 혹여 잘못된 선택을 할지라도 '잘되게 만들 수' 있는 권한과 수단도 있었다. 품목과 사업자를 선정하고, 사업 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을 만들어주고, 모자라는 역량은 특혜와 보
조로 메워주었다. 뒷주머니를 차는 사업자에게서는 사업권을 회수 해버리고, 잘하는 사업자는 더 큰 사업권을 보장해줄 수 있는 당근과 채찍도 가지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권력자들이 혹여 '떡고물'을 챙기더라도, 이는 그저 일을 되게 만드는 부수적인 필요악이거나 적어도 '떡' 만드는 일을 망치지는 않을 정도라고 항변했다. 이것이 한국 계획경제 운영의 틀이었다. 이런 식의 설명은 적어도 개발 경제 시대에 한국 경제의 발전 과정과 시장이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방식으로 작동했는지의 실상을 설명하는 데 틀림이 없다. 세계에서 가장 유별난 관치 경제의 틀에서 '한강의 기적'이라고까지 불린 눈부신 산업 화를 이룩했던 한국식의 발전 패러다임은 1960년대 초부터 1997년 외환 위기를 맞을 때까지 40년 가까이 지속되었다.
한국이 개발 연대의 계획경제체제에 변화를 시도하고 시장경제 체제로의 전환을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으로 볼 수 있다. 1960년대 초에 본격적인 산업화를 시작하면서 정부는 1962년부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라는 이름부터 '계획경제'임을 명시하고, 경제를 5
년 단위로 운영하였다. 이 체제는 4차까지 이어져 1981년에 종료되 고, 1982년부터는 '경제사회 발전 5개년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7차 까지 지속되었고, 7차 계획 종료 이후에도 경제는 여전히 그 이전의 방식과 틀에 따라 운영되었다.
계획경제의 마지막 단계이자 시장경제로의 전환의 일환으로 김영삼 정부는 출범과 함께 '신경제 5개년 계획'을 1993년부터 추진했지만 1996년에 조기 종료되었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의 5개년 계획은 몇 가지 의미 있는 개혁을 했다. 1993년에는 모든 금융거래에 실명을 의무화하는 '금융실명제'가 도입되었다. 1994년에는 계획경제의 상징이자 주무 부처였던 경제기획원이 폐지되고, 재무부와 통합되어 재정경제원으로 변신하였다
계획경제에서 시장 경제로 전환된 것은 1995년이라 볼 수 있다. 1980년대 초에 부분적 인 시장 자유화 정책이 시행되었기에 일부 학자들은 이때부터 자유 으라는 상주의적인 시장경제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1980년대의 자유화 정책은 국가를 시장으로 대체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 다. ' 이는 '국가 개입의 새로운 형태일 뿐, 독점자본과 시장, 그리고 노동에 대한 국가의 주도성을 포기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즉 1980년대 대내적 자유화 정책은 어디까지나 독점자본(재벌)의 합리화를 위한 국가 주도의 정책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꽝스럽게 보일지 모르지만, 계획경제 시절에는 정부가 음식 값, 목욕탕 요금, 여관 숙박료, 미용실 요금, 그리고 심지어는 다방 커피 값까지 결정했다. 예를 들어 목욕탕 요금을 업주 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된 것은 1990년 9월이었다.
그러나 나 자율화 이후에도 오랫동안 정부는 소위 '행정지도'라는 명목으로 목욕탕 요금을 규제해서 목욕탕 주인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아래 는 계획경제 시대에 정부가 어떻게 목욕탕 요금, 다방 커피 값, 그리 고 자장면 값을 통제했는가를 보여주는 기사를 발췌했다.
창원과 마산시 등은 4일부터 시기동단속반을 구성하는 한편 읍면동 직원들까지 동원해 인상된 요금표를 철거하는 등 강제적으로 요금을 환원토록 하고 이에 불응할 경우 위생 검사와 세무조사, 경영사항제 출명령권을 발동하겠다고 밝히고 있다......·(중략)·····(목욕탕)업주들 자율화됐는데도 해거 은 "지난 1990년 9월 이후 목욕 요금이 자유화됐는데도 정부가 공권력을 이용해 근거도 없는 단속을 하고 있다."며······(중략)·····도 와 시군에서는 "(목욕탕)업소들의 사정을 이해하지만 연말 물가를 잡을 수 없다. "면서 "업소들의 호소에 상부 지시로 단속하지 않을 수 없다 "고 단속의 어려움을 밝혔다.
1996년 11월 5일자 기사; 서울시는 8일 최근 일부 대중음식점을 중심으로 음식 값 인상 움직임 을 보이자 강력한 행정지도를 통해 가격 인하를 유도키로 했다. 시는
최근 일부 중국음식점에서 짜장면 가격을 1400원에서 1500원으로 100원 인상한 것을 비롯하여, 대중음식점들이 가격 인상 움직임을 보임에 따라······(중략)·····음식점 가격 관리를 강화하고 가격을 인상한 업소에 대해서는 가격 인하를 유도키로 했다. 시는 이와 같은 조치에
도 불구하고 업체들이 가격을 인하하지 않을 경우 위생 점검을 실시
하거나 국세청에 세무조사를 의뢰할 방침이다.5
(<연합뉴스>, 1991년 11월 8일자 기사)
공무원들이 비록 자신들의 '행정지도'의 부당성을 알면서도 상부 지시 때문에 목욕탕 업주들에게 부당한 가격 인하 압력을 행사하 는 상황을 기사는 전하고 있다. 정부가 목욕탕 요금이나 자장면 값 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위생 검사와 세무조사를 압박 수단으로 업
주들에게 가격을 내리게 했다는 것은 지금의 시장경제에서 보면 황
당한 일이다.
이러한 정부의 시장 개입 관행은 시장경제로 전환한 이후에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이명박 정부의 'MB 물가지수'다. MB 물가지수는 쌀, 라면, 배추, 화장지와 같은 생활필 정권의 계획 수품의 가격을 정부가 관리하겠다고 이명박 정부 초에 추진한 것이다.. 그러나 MB 물가지수에 포함된 품목들의 가격은 오히려 소비 자물가지수보다 더 많이 올라서 아무런 실효성이 없었고,6 박근혜 정부에서 폐기되었다.
한국이 계획경제 시대에 실시했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경제 전문가 외에 일반 국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두 가지를 소개한다.
먼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5· 16 군사 쿠데타 이후에 박정희 정부가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 그 시작은 이승만 정부 였다. 이승만 정부는 1958년에 '경제개발 3개년 계획(1960~1962)'을 수립했고, 다음 해인 1960년 4월 15일에 국무회의에서 의결했으나
4·19 혁명으로 정권이 무너져서 이를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1960년
4· 19 혁명 이후에 같은 해 8월 출범한 장 면 정부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해서 1961년 초부터 실행에 들어갔으나, 같은 해 5월 에 일어난 5 · 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이 무너져서 이 계획은 중단되었 다.' 따라서 5 · 16 군사 쿠데타 이후 군사정부가 1962년에 '제1차 경 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행한 것은 사실 이승만 정부, 그리고 뒤이은 장 면 정부의 5개년 계획에 바탕으로 두고 이어받은 것이다. 군사정부는 이런 종합 계획을 수립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고, 정권의 계획을 일부 수정하여 발표했던 것이다.
계획이 정치한 것도 아니었고 구체성도 부족했다. 하지만 계획서는 군부의 경제에 대한
시각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당시 군사정부는 1962년 <경제백서> 에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기본 목표는 경제의 자립화와 공 업화를 위(해서)······강력한 계획성이 가미된 자유경제원칙의 테두리 안에서 경제성장을 극대화하여 자립 경제를 이룩하는 것이라고 밝
히고 있다. 이때 방점은 군사정부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던 미국에 대한 립서비스(lip-service)로 언급한 '자유경제원칙'이 아니라 '강 력한 계획성'이었다. 돌이켜보면 전쟁으로 경제가 피폐해진 1960년 대 초는 외국 원조로 근근이 먹고살던 시절이었다. 오죽하면 경제정
책의 목표가 '자조, 자립, 자주'를 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원조 경제를 탈피하는 것이었겠는가. 여기에 자유로운 시장의 작동으로 효 율성을 통한 고도성장을 달성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없었다. 이후 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군사정부에 이어서, 김영삼 정부에서 수립
한 신경제 5개년 계획까지 30년 이상 지속되었다.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사실은 북한이 한국보다 앞서 경제개발 계획을 먼저 실시했으며, 1970년대 중반까지는 북한 이 한국보다 잘살았다는 것이다. 북한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부터 경제 부흥 3개년 계획, 1957년부터 제1차 5개년 계획을 시행함
으로써 성공적인 전후 복구를 달성하고 연평균 20% 안팎의 급속 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10 제1차 계획은 목표를 계획보다 일찍 달 성했고, 곧 이어서 실시된 중공업 육성에 초점을 맞춘 '제1차 7개년 계획(1961~1967)'은 계획보다 3년이 늦춰진 1970년에 완료되었다.11
1961년부터 1970년까지의 기간 동안 북한의 공업은 연평균 12.8% 였다.
반시장적인 재벌과 대기업
필자는 한국이 시장경제를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규제나 신자유주의가 넘쳐나서가 아니라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공정한 경쟁조차 구현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경쟁이 만능도 아니며 모든 분야에서 무차별로 경쟁 원리가 적용되어서
도 안 된다. 경쟁 시장의 원리가 적용되지 못하는 시장 실패 분야에 서는 국민의 대리인인 정부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부문이 아니라면 경쟁 원리가 적용되어야 하며, 시장경제가 작동하려면 공정한 경쟁이 이뤄져야 한다. 누구에게나 경쟁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지고, 경쟁의 과정이 공정해야 한다. 경쟁의 출발선에서 모두가 동일한 위치에서 시작할 수는 없지만 경쟁의 과정에서 각자의 노력과 창의력으로 결승점에 이르렀을 때 출발선에서와는 다르게 순위가 뒤바뀌는 역동성이 존재해야 한다. 또한 경쟁의 결과로 얻어진 가
치가 경쟁에 참여하고 기여한 사람들에게 공정하고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원론적인 공정한 경쟁이 완벽하게 이뤄지는 시장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굳이 구체적인 통계와 분석을 보지 않더라도 상식적인 수준에서 '한국에서 경쟁이 공정
하게 이뤄지고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대다수 국민들의 답은 '아니다'이다.
개천에서 용 나지 않고', '티끌 모아 태산 되지 않는' 것이 한국의 시장경제다. 경쟁은 기득권 세력들의 지배 논리로 이용되고 있다.
출발선의 1등이 결승점에서의 1등이고, 한 번 1등이면 영원한 1등이 되는 것은 경쟁이 아니다. 한국이 시장경제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데에는 여러 가지 걸림돌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재벌의 시장 지배와 정부의 관치, 경제다. 재벌들
은 한국의 경제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정책적으로 육성되었고 경제 성장에 주요 수단이었으며 큰 기여를 했다. 지금도 한국 경제의 성장이 재벌의 성장 여부에 따라서 결정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한 재벌들이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는 시장경제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할 책임이 있는 정부와 정치권이 오히려 공정한 경쟁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도 또 다른 아이러니다.
재벌들은 하지 않는 사업이 없을 정도로 거의 모든 분야에 진출하고 있다. 그리고 각 사업 분야에서 재벌의 시장 지배력은 가히 절-대적이다. 신생 기업이 재벌 기업이 하지 않은 사업을 찾아서 성장한 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이고, 중소기업이 재벌 기업이
하고 있는 사업에 도전한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소수의 재벌 그룹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구조에서 소기업이 중기업으로, 중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기업 생태계가 한국에서 작동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중기업이나 중
견기업마저도 대기업과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라 대기업의 하청기업으로서 성장하는 구조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재벌 구조가 확고하게 자리 잡기 시작한 1980년대 중반 이후 지난 30여 년 동안 정주영, 이병철, 김우중과 같은 새로운 창업자의 성공 신화가 나오지 않
고 있다.
그러한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미국과 같이 시장경제의 역사가 오래된 나라에서도 100대 부자의 70%가 당대의 창업자인데 반하여, 한국에서는 거꾸로 75%가 물려받은 부자라는 사실이다.
또한 국가 경쟁력을 발표하는 WEF의 2013년 세계 경쟁력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의 국가 경쟁력은 19위이지만, '소수의 기업이 시장을 지 배하고 있는가'라는 조사 항목에서는 99위로 소수 재벌 기업의 시 장 지배가 매우 심한 나라다.
신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시작한 나라로 지목받는 영국과 미국은 각각 6위와 9위이며, 북유럽의 독일과 스웨 덴도 각각 2위와 21위로 소수의 재벌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한
국과는 전혀 다른 시장구조를 가지고 있다. 또한 다른 세계 경쟁력 연보를 발표하는 IMD 보고서에 의하면 조사 대상 59개 국가 중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효율성 차이에서 한국은 꼴찌인 59위를 기록 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균형이 가장 심한 나라다.82
재벌 그룹들은 총수 가족이 소유한 회사와 계열사를 부당하게 지원하는 일을 빈번하게 자행하고, 일감 몰아주기와 같은 회사의 사업 기회조차 총수 가족이 독차지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다. 상장 된 주식회사에서도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는 대주주들이 회사 재산 을 개인 재산과 같이 제멋대로 가져가는 횡령이나 배임과 같은 범죄•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재벌들의 장악하고 있는 한국의 시장에서 경쟁이란 새로운 승자를 만드는 순기능보다는 오히려 기득권을 강화해주는 역기능이 더 많이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시장구조
에서는 공정한 경쟁을 기대조차 못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현대차는 적대적 M&A 걱정이 없는가?|
외국인 소유 지분이 높아서 적대적 인수 · 합병을 우려한다면, 이는 삼성전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시가총액 상위 20개 기업 중에서 외 국인 지분이 이미 50%를 넘는 기업이 6개나 되고, 삼성전자와 같이 40%를 넘는 회사도 4개나 된다. 45 시가총액 상위 기업에는 현대자
동차, 포스코, 신한금융지주(신한은행의 지주회사)들이 포함되어 있는 데, 이러한 기업들도 삼성전자와 마찬가지로 한국 경제에 대단히 중 요한 회사들이다. 삼성전자의 외국인 소유 지분이 60%를 넘어서서 적대적 인수·합병 논란이 시작되었던 2004년에 현대자동차의 외국 인 지분은 57%를 넘었고, 포스코와 신한지주의 외국인 지분은 삼성전자보다 훨씬 높은 71%와 66%였다.46 이 중에서도 포스코는 외국인 소유 지분이 70%를 넘어섰을 뿐만 아니라, 삼성전자의 이건희 회장과 같이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는 대주주도 없다. 또한 포스코
시가총액은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14% 정도이기 때문에 적대적의 데 동원해야 할 자금의 규모도 훨씬 작다.47 이러한 인수 합병 하는 상황에 비춰볼 때 만약 외국인 주주들이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 한다면 포스코가 삼성전자보다 훨씬 더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
이다.
한국 3대 민간은행인 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의 경우도 찬가지다. 세 은행의 지주회사들은 모두 외국인 주주들의 소유 지분이 삼성전자보다 훨씬 높다. 국민은행을 100% 소유하고 있는 KB 금융지주의 지분을 5% 이상 가진 주주는 9.96%를 보유한 국민연금 하나뿐이다.48 그러나 국민연금은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재무적 투자자이기 때문에 국민은행에는 대주주의 '경영권'이 존재하지 않 는다. 그리고 KB금융지주는 외국인 주주들의 지분이 삼성전자의 49.7%보다 훨씬 높은 63.5%이고, 한 번도 외국인 지분이 50% 이하 로 내려간 적이 없다.49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최대 은행인 국민은 행을 외국인 주주가 인수· 합병한다거나 경영권을 장악하려 한다는 우려가 없다. 신한금융지주도 외국인 지분이 66%까지 올라갔고 짧 은 몇 달을 제외하고는 항시 50% 이상을 유지했다. 하나금융지주 의 외국인 지분은 무려 81%에까지 이르렀고 지속적으로 60% 이상 을 유지했다.50 3대 민간은행의 지주회사들은 삼성전자와 비교해서 외국인 지분이 훨씬 높을 뿐만 아니라 포스코와 마찬가지로 경영권
을 가진 대주주도 없고 시가총액도 삼성전자의 5~10% 수준에 불과 하다. 3대 민간은행에는 5% 이상을 소유한 외국인 주주들이 있지만 삼성전자는 없다.51 은행의 경우에는 대주주가 되기 위해서는 정부 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제도적 장치가 있지만, 은행의 대주주가 삼
되 는 자격 요건을 갖춘 외국인 주주라면 정부가 이를 거부할 명분이 없다. 따라서 단순히 외국인 지분이 높다는 사실 때문에 외국인 주주 들에 의한 적대적 인수·합병의 위험이 있다면 삼성전자보다 민간은행들의 위험이 훨씬 더 크다.
삼성전자보다 외국인 지분이 높을 뿐 아니라 대주주도 없고 시가총액도 작은 포스코나 3대 민간은행들, 그리고 현대자동차에 대 정 해서는 외국인 주주에 의한 적대적 인수· 합병 논란이 없었는데 왜 주 유독 삼성전자에 대해서만 적대적 인수· 합병 논란이 있었던 것일 까? 삼성전자 외국인 주주와 현대자동차 및 포스코의 외국인 주주 들이 특별하게 다른 점이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삼성전자 외국인 주주들이 현대자동차와 포스코의 외국인 주주들과는 다르게 적대 적 인수· 합병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할 만한 차이나 근거
도 없었다.
3대 민간은행의 외국인 주주들과 비교해서도 특별히 삼성전자 외국인 주주들이 적대적 인수· 합병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 다고 판단할 만한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삼성전자에 대해서만 외국인에 의한 적대적 인수· 합병 논란이 지속되어 온이
유가 무엇일까? 현대자동차나 포스코가 삼성전자보다 규모가 작은 회사이니 외국인이 경영권을 가져도 괜찮고, 삼성전자만은 절대로 안 된다는 의미일까? 또는 한국 3대 민간은행의 경영권을 모두 외국 인이 장악한다 해도 괜찮다는 의미일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삼성
전자가 한국 경제에 소중한 만큼이나 현대차, 포스코 그리고 3대 은
행들도 마찬가지로 소중한 기업들이다.
삼성전자에 대해서만 적대적 인수 · 합병의 논란이 있었던 것은 삼성그룹이 '자초한 일이었다. 삼성그룹은 2004년 적대적 인수·합 병 가능 성과 위험성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공정거래위원회를 방문해서 그러한 우려를 직접 전달하고 설명하기까지 했다.53 실제
로 삼성전자 적대적 인수 · 합병을 시도한 주주가 있었는지의 여부는 알려지거나 보도된 바가 없고, 당시의 외국인 소유 지분 구조로 봐 서 그런 시도를 할 만한 역량이 있는 주주도 없었다. 그렇다면 왜 삼 성전자는 스스로 적대적 인수 합병 논란을 키운 것일까? 그 해답은
삼성그룹의 소유 지배 구조에 있었다.
물고 물리는 돌려 막기
일반 사람들에게 삼성전자의 '오너(owner)'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대 부분은 당연히 이건희 회장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이건희가 소유한 지분은 오너라고 불릴 만한 수준이 전혀 아니다. 이건희는 삼 성전자의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지만 실제로 1대 주주도 아니고 자
신이 소유한 지분은 극히 적은 소액주주에 불과하다.54 이건희는 자신과 가족이 소유한 지분이 아니라 계열사가 소유한 지분으로 경영 권을 확보하고 있다. 적대적 인수 · 합병 논란이 제기된 2004년에 계 열사들이 소유한 지분은 12.72%이었고 이건희 가족과 임원 등의 특 수 관계자들이 소유한 지분을 다 합하면 16.05%였다. 이 중에서 가 장 많은 지분을 소유한 삼성전자의 1대 주주는 이건희가 아니라 7.23%를 보유한 삼성생명이었다.
그런데 2004년 당시에 삼성생명의 소유 구조를 보면 1대 주주 는 비상장회사인 삼성에버랜드로 19.34%를 보유하고 있었고, 이전 희의 소유 지분은 4.54%에 불과했다. 56 그리고 삼성생명의 1대 주주인 삼성에버랜드의 소유 구조를 보면 이건희가 3.7%, 아들인 이재용
이 25.1%, 세 명의 딸들이 25.1%를 소유해서 가족들의 지분합계가 53.9%인 소유 구조를 가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계열사들의 출자 구조에서 최종 고리에 있는 삼성에버랜드의 가족 지분이 50%를 넘어서는 방법으로 삼성
전자의 경영권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1대 주주로서만이 아니라 삼성그룹의 다른 주요 계열사의 지분을 동시에 소유하고 있는데, 삼성생명이지 분을 소유한 삼성물산, 삼성카드, 삼성화재 등의 계열사들은 다시다른 계열사들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어서 삼성생명은 삼성 계열사
들의 순환 출자 구조의 핵심적 연결 고리다. 삼성에버랜드는 삼성생 명의 1대 주주이고,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1대 주주이고, 삼성전자 는 삼성카드의 1대 주주이고, 다시 삼성카드는 삼성에버랜드의 1대주주다. 즉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
랜드로 이어지는 돌려 막기 '순환 출자 구조'가 이건희 가족의 경영 •권을 확보하는 핵심적 연계 고리다. 그뿐만 아니라 삼성생명은 삼성물산의 지분을 소유하고, 삼성물산은 삼성전자의 지분을 소유하고,삼성전자는 삼성카드의 지분을 소유하고, 삼성카드는 삼성에버랜
드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어서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물산- 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또 다른 순환 출자구조가 있다. 그리고 또 삼성생명은 삼성카드의 지분도 소유하고 있다. 그래서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바로 이어
•취막기식 순환 출자가 삼성그룹의 자체 보고에서는 76개 있는 것으치는 또 다른 순환 출자 구조를 가지고 있다. 계열사 간의 이러한 돌•로 밝혔지만,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의 분석에 의하면 무려 2555개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57
이같이 여러 개의 복합적인 순환 출자 구조에서 삼성생명은 가창핵심적인 연결 고리의 역할을 하는 아킬레스건(achillest)과 같은 •존재다. 그런데 사건이 생겼다. 2004년 당시에 삼성생명이 지분을 소 •유한 계열사들에 대해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에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당시에 공정거래위원회는 재벌 그룹 내에서 자신의 금융 계열사가 소유한 다른 계열사 지분에 대한 의결권을 30%에서 15%로 낮추는 법 개정을 추진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한 법 개정의 취 지는 재벌 그룹들이 고객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금융 계열사를 이
용해서 총수의 경영권을 확보하는 것을 막고자 한 것이었다. 즉 금융회사는 자기자본이 아니라 고객의 돈으로 다른 회사의 주식을 살 수 있기 때문에 고객이 맡긴 돈을 투자한다는 명분으로 자기 계열사 ・들의 주식을 사고 그 주식에 해당하는 만큼 의결권을 행사한다면,
이는 고객 돈으로 경영권을 확보해주는 형국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삼성생명과 이건희 등의 특수 관계인이 당시에 보유한 삼성전자의 지분 합계가 16.05%이었으니 법이 개정되면 이 중에서 일부의 지분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는 것이었다. 58 삼성전자 •판이 아니라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카드 등의 삼성그룹의 금융계
한을 받게 되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앞으로도 삼성생명이나 삼성화
열사들이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다른 계열사들에 대한 의결권도
재와 같은 금융 계열사를 통해서 삼성전자의 지분을 늘려간다고 해 도 의결권을 추가로 확보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었다. 삼성그룹은 이러한 공정거래법의 개정을 반대하기 위해서 스스로 삼성전자가 외 국인 주주들에 의해서 적대적 인수·합병 될 가능성이 있다는 문제
를 제기한 것이었다. 그리고 삼성그룹은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물산 3개 회사를 원고로 2005년 6월 공정거래법 11조의 의결권 제한이 위헌이라는 취지로 헌법재판소에 헌법 소원을 냈다가 나중에 취소하는 소동까지 벌였다.
당시에 외국인 지분이 높았던 현대자동차나 포스코 등의 다른 회사들은 삼성전자와는 달리 금융 계열사를 통해서 소유한 지분이 전혀 없었다. 따라서 공정거래법이 개정된다고 해도 이 회사의 의결 권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다른 재벌 그룹들의 경우에도 금융 계
열사를 통해서 총수의 경영권을 확보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공정 거래법의 개정이 전혀 영향이 없거나 있는 경우에도 그 영향이 미미 했다.60 외국인 지분이 50%를 넘으면 외국인 주주에 의해서 적대적 인수·합병 될 수 있다는 삼성그룹의 주장은 다른 재벌들이나 기업
들과는 별 관계가 없는 삼성그룹만의 문제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재벌의 이익을 대변하는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뿐만 아니 •라 일부 친재벌 언론과 일부 정치권까지 가세해서 마치 외국인 주주들이 한국 기업들을 적대적 인수·합병 할 것처럼 호들갑 떨었다. 일
부 언론은 삼성전자 외국인 주주 중에서 시티은행(Citibank)이 11.8% 를 소유하고 있어서 그럴 위험이 더 크다는 엉터리 기사를 내기도 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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