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본 독점규제의 딜레마
현재 경제 분야에서 이름깨나 있다는 나라치고 독점을 규제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오늘날 독점을 규제하는 이유는 독점이 시장에서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방해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시장경제 체제에서는 경제주체들이 자유롭게 경쟁하되 공정하게 경쟁하면 경제가 성장하고 기업이 발전한다는 가정을 전제로 한다.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하여 국민경제를 발전시킨다”
이것이 독점규제의 이상이다. 우리나라도 이 이상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규정해두고 있다. 그런데 이 독점에 대한 기준은 국내시장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시장을 전제로 하면 도대체 독점이란 좀처럼 발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독점규제의 이상은 화려하지만, 실제 이 화려한 이상을 모든 나라에 동일하게 적용시키면 당장 모순이 발생한다. 모순을 더 명확히 드러내기 위하여 경제규모 차이가 큰 미국과 스위스를 대상으로 2016년 기준으로 살펴보자. 아래 인구 및 국내총생산 자료는 비교자료의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2017년 9월 28에 갱신된 KOSIS 국가통계포털이 제공하는 OECD 국가의 주요지표를 토대로 하였다.
면적 : 미국 9,629,091 km2(유엔통계국기준), 스위스 41,285km²
인구 : 미국 322,180,000명, 스위스 8,402,000명
국내총생산(GDP) : 미국 18,569.1(10억불), 스위스 659.8(10억불)
계산의 편의를 위하여 각 국가의 한 거래분야에서 시장이 국가 전체 경제규모의 10% 정도를 차지할 수 있다 가정하고, 독점의 기준을 시장점유율 50%로 잡는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양국의 기업이 독점에 해당하게 되는 기업의 시장 규모는 다음과 같이 계산된다.
미국기업 시장규모 = 18,569.1(10억불) × 0.1 × 0.5 = 928.455(10억불)
스위스기업 시장규모 = 659.8(10억불) × 0.1 × 0.5 = 32.99(10억불)
그러면 미국의 정책당국은 미국기업이 미국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이 50%인 매출액 928.455(10억불)에 이르도록 독점을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러나 스위스 정책당국은 시장점유율이 50%인 매출액 32.99(10억불)만 되어도 그 기업의 독점성을 문제 삼아 규제에 들어가야 한다. 스위스에서 우리와 같이 경제력집중을 억제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면 한 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이 50%이상이 되는 기업은 대체로 경제력이 소수에 집중되어 있을 것이므로 이를 규제하여 더 커지지 못하게 막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스위스에서는 미국 기업과 비교하면 구멍가게 정도의 기업만 있게 될 것이다.
스위스에서 미국 기업규모의 3.55%(=32.99/928.455)에 해당하는 기업들이 우글거리는 것이 과연 스위스 경제에 도움이 될까. 당연히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장이 국내에만 한정되는 폐쇄경제에서는 그렇게 하여 국내시장의 경쟁질서를 확보하는 것이 공정한 것이지만, 개방경제 체제하에서 스위스 당국이 그런 정책을 펴는 것은 심히 어리석은 것이다.
“국내 시장을 전제로 하는 독점의 기준을 가지고 글로벌 시장에서 활동해야 하는 자국 기업의 규모를 규제해야 한다.”
이것이 국내시장 점유율을 전제로 하는 독점규제가 가지는 딜레마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GDP는 2016년 기준으로 미국의 7.59%(=1,411.0/18,569.1)에 불과하다. 과연 미국과 동일한 시각에서 국내 기업의 덩치가 커지는 것을 막는 정책을 펴나가는 것이 잘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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