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에서는 몇 사람이나 상속세 부과에 반대했을까?
스위스는 돈을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 중에 하나다. 스위스 사람들은 돈에 관한 생각이 매우 철저하다. 그래서 금융업이 매우 발달했다. 필자가 2013년 스위스 로잔(Lausanne)에 갔을 때 언덕 위에 세워져 있는 도시를 보면서 산비탈에도 이렇게 도시를 만들 수 있구나 하고 감탄한 적이 있다. 스위스는 국토의 대부분이 산이다.
이런 척박한 자연환경으로 인해 역사적으로 스위스의 젊은이들은 용병으로 해외로 나가서 가족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였다. 스위스 용병은 받은 돈에 대해 철저히 신뢰로써 보답하기로 명성이 높았다. 1792년 프랑스 혁명 당시 루이 16세가 시민군에게 포위되어 있을 때, 다른 근위대들이 모두 도망 가버린 상태에서 스위스 용병들만이 남아 루이 16세를 지키고 있었다. 이미 상황이 절망적이라고 판단한 루이 16세는 스위스 용병들에게 “그대들과는 상관없는 싸움이다. 고국으로 돌아가라.”고 권했지만, 786명의 스위스 용병들은 이를 거부하고 모두 장렬하게 죽음을 선택했다. 그들이 전사한 이유는 그 후 용병의 시신에서 프랑스 혁명군이 발견한 편지를 통하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전사한 한 용병이 가족에게 보내려했던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우리가 신뢰와 신용을 잃으면 후손들은 영원히 용병을 할 수 없기에 우리는 죽을 때까지 죽음으로 계약을 지키기로 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삶이란 이토록 장엄한 것이 된다. 당시 유일한 먹거리인 용병직을 자식세대가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버린 것이다. 이 처절하고 장엄한 소식을 전해들은 스위스 사람들은 그 후 휴양도시 루체른(Luzern)에 온몸에 화살이 박힌 채 꺾여진 프랑스 브르봉 왕가의 방패를 껴안고, 고통스럽게 마지막 숨을 내쉬는 사자의 모습을 조각한 사자상을 만들어 이 사건을 기념하고 있다. 이 사자상은 ‘빈사의 사자상( Löwendenkmal )’으로 불리며 루체른의 명소가 되고 있다. 마크 트웨인은 이 사자상이 새겨진 바위를 ‘세계에서 가장 슬프고도 감동적인 바위’라고 묘사하였다.
돈의 소중함을 아는 스위스 사람들은 상속세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일부 지방정부에서는 상속세를 인정하고 있지만 국세인 상속세는 없다. 그런데 소수의 부자가 부를 독점하는 현상이 심화되자 2015년에 스위스에서도 부의 재분배를 위해서 상속세를 통해 215만 달러(1달러를 1000원으로 계산하면 대략 21억5천만 원) 이상의 재산에 세금을 매기자는 법안이 제출되었다. 그러나 이 법안은 70% 이상의 투표자에 의하여 거부되었다.
당시 총유권자 수는 5,265,120명이고, 총 투표자 수는 2,301,320명으로 43.7%의 투표율을 보였다. 그 중 상속세를 부과하는 데 찬성한 투표자는 657,851명으로 29.0%에 불과하고, 상속세에 반대하는 투표자는 1,613,982명으로 71.0%에 달한다. 물론 무효나 기권표도 있다.
어느 국가에서나 부가 소수의 부자에 집중되고 소득의 불평등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기 마련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스위스에서는 투표자의 71.0%에 달하는 1,613,982명이 상속세를 거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상속세를 폐지하자고 말하는 것은 심히 도발적이다. 그런데 돈의 가치를 잘 아는 스위스 사람들이 왜 상속세를 거부하는 도발적인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을까 궁금하다. 그들은 부자가 부를 대물림하는 것이 불쾌하거나 사회정의에 반한다고 느끼지 않는 걸까? 설마 상속세를 부과하지 않는 것이 이치적이고 더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들은 왜 상속세를 내지 않는 부자들에 대하여 분노하지 않을까? 스위스 사람들의 속내를 알기가 어렵다.
그런데 고율의 상속세를 유지해오던 스웨덴이 2004년에 상속세를 폐지하고도 복지국가라는 명성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상속세와 소득의 재분배 간에 그다지 상관관계가 있어보이지는 않는다. 상속세에 대하여 수학적 사고를 해봐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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