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이 꺼져가고 있다고 염려하고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한국의 성장 동력을 숫자로 살펴본다. 사람들은 오늘날 시대의 특징을 지식기반산업사회라고 불러왔고, 근자에 와서 여기에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수식어까지 붙게 되니, 이 시대는 영락없이 지식, 그 중에서도 과학기술 지식이 가장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과학기술 지식이 국가의 핵심적인 성장 동력이 되고, 경쟁력이 되는 시대다.
다행하게도 WIPO(World Intellectual Property Organization, 세계지식재산권기구)에서 전 세계의 과학기술 지식의 결과를 수집하여 관리하고 있어서 국가 간의 과학기술 지식의 창출 정도를 최근까지 시계열적으로 살펴볼 수가 있다.
WIPO에서는 매년 세계지식재산지표(World Intellectual Property Indicators)를 발표하고 있는데, 최근 발표한 것은 '세계지식재산지표 2017(World Intellectual Property Indicators 2017)'이다. 이 지표 2017은 사실은 WIPO 회원국의 특허, 상표, 디자인 등 지식재산권에 관한 2016년 각종 통계수치와 변화추이를 수록한 통계보고서이다.
이 지표 2017에 의하면, 한국은 2016년 특허출원 건수가 세계 4위이며, GDP 및 인구 대비 특허출원 건수가 세계 1위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은 2004년 이래 13년 동안 단위 GDP(1,000억 달러)당 특허출원 건수가 줄곧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놀라운 일이다. 불가사의한 일이 아닌가. 한두 해 정도는 다른 나라가 1위를 대신해도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일반 매체들이 2016년 우리나라 특허출원 건수가 20만9000건으로 중국(134만건), 미국(60만6000건), 일본(31만8000건)에 이어 세계 4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하고 있지만, ‘WIPO IP Statistics Data Center’가 제공하는 자료들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2016년 특허출원 건수는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다.
위의 출원 건수는 한국 특허청이 접수한 특허출원 건수를 기준으로 한 것인데, 한국인만 반드시 한국에 특허출원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맞지 않다. 한국은 괜찮은 시장이기 때문에 외국인이나 외국기업도 한국 특허청에 특허를 출원한다. 특허 보호는 법적으로 속지주의 원칙을 취하고 있어서 한국에 출원해야 한국 시장에서 특허를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국의 연구자나 기업들도 질이 좋은 기술일수록 시장이 넓은 외국에 먼저 출원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에서 특허를 출원한 한국 기업도 다시 외국에 특허를 출원한다. WIPO는 이러한 여러 가지 변수들을 고려한 데이터를 제공한다.
따라서 이를 토대로 한국인의 정확한 특허출원 건수는 대략 다음과 같이 계산된다.
우리나라 특허출원 건수 = 한국 특허청 출원 건수 - 한국 특허청 외국인 출원 건수 + 한국인의 외국출원 건수
한국 특허청 출원 건수 208,830건
한국 특허청 외국인 출원 건수 45,406건
한국인의 외국출원 건수 70,371건
2016년 한국인(한국 기업 포함) 특허출원 건수 = 208,830 – 45,406 + 70,371 = 233,795건
계산해 보면, 한국인의 특허출원 건수는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보다 대략 3만 건이 더 많다. 그동안 WIPO 통계 기준을 잘 살펴보지 않아서 우리 실력을 실제보다 낮게 인식해온 것은 다소 아쉬운 일이지만, 우리의 실력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을 아는 것은 덤으로 얻는 기쁨이다.
위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전 세계 특허출원은 처음으로 300만 건을 넘어선 312만8000여건을 기록했다. 이는 2015년 288만9000건 대비 8.3% 증가한 것으로, 나라마다 치열하게 기술개발 경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렇게 기술이 미래가 되는 치열한 시대에 대한민국이 특허출원 건수로 세계에서 4위를 차지하고, GDP 대비 출원 건수와 인구 대비 출원 건수에서 미국·일본·독일 등 주요 기술 선진국을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사실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한국인의 자질, 즉 총명함과 부지런함, 뛰어남과 역동성을 증명하는 자랑스러운 데이터이다. 한국의 성장 동력은 여전히 살아 있고, 대한민국은 여전히 희망에 넘칠 수 있다.
필자도 공대 교수들과 함께 발명을 시도해본 적이 있지만, 질이 좋은 특허는 쉽지 않다. 대부분 질이 좋은 특허는 연구실과 기업에서 나온다. 연구실과 기업은 특허의 기본적인 생태계에 해당한다. 지금처럼 정부가 R&D 예산을 상대적으로 줄이고 기업을 너무 옥죄면 생태계가 파괴되어, 특허출원 건수의 추세가 꺾이고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이 떨어질 것이다. 대한민국은 하늘이 무너져도 제4차 산업혁명의 이니셔티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주석]
* WIPO (2017). World Intellectual Property Indicators 2017. Geneva : World Intellectual Property Organization. p.8 Table 1 : Ranking of total (resident and abroad) IP filing activity by origin, 2016, and p.35, p.71.
** 혹자는 특허출원 건수는 무의미하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필자는 이런 견해에 반대한다. 가치투자자들이 기업 분석에서 매출액을 가장 기본적인 데이터로 삼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과학기술 분석에 있어서는 특허출원 건수를 가장 기본적인 데이터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특허가 출원되어야 그 속에 질 좋은 특허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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