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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기 칼럼] 천재 수학자 에드워드 소프의 커닝 페이퍼
  • 윤진기 경남대 명예교수
  • 등록 2025-12-14 20:57:45
  • 수정 2025-12-14 21: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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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기 경남대 명예교수] 퀀트 투자[1]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드워드 소프(Edward O. Thorp)는 수학계에서 천재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수학자이지만, 투자 업계에도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일화를 남겼다.


룰렛을 예측하는 장치를 만들려고 계획 중이었던 그는 동료 교수가 소개해 준 블랙잭(Blackjack)  전략의 핵심을 손바닥 크기의 종이에 요약해 적고 그것을 들고 카지노로 갔다. 조건들이 기억하기에는 다소 복잡하고 많았던 모양이다.[2] 이것이 소프의 첫 번째 커닝 페이퍼이다.


커닝 페이퍼는 학생들이 시험을 칠 때 가끔 사용하는 것이다. 들키면 혼나기도 하고, 재수가 나쁘면 재수강을 하기도 한다. 그런 커닝 페이퍼를 천재 수학자가 준비했다는 사실은 신기하면서도 재미있다.


첫 번째 커닝 페이퍼를 가지고 카지노에 갔을 때, 그는 그것을 손에 감추고 있다가 들키면 쫓겨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3] 결국 소프는 카지노에서 어쩔 수 없이 커닝 페이퍼를 보면서 블랙잭 게임을 했다. 사람들은 신기해했고, 혹자는 말도 안 되는 일을 한다며 비웃기도 했다. 그러나 소프가 그런 이상한 방법으로 실제로 돈을 따자, 비웃음은 놀라움과 존경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한 번은 그렇게 멋지게 돈을 땃지만, 그 첫 번째 게임 전체에서는 오히려 돈을 잃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15분 후 나는 판돈 10달러 가운데 8.5달러를 잃고 그만두었다. …… 나는 그날, 무지와 미신이 팽배하던 블랙잭 테이블의 분위기 속에서, 실력이 좋다고 여겨지던 플레이어들조차 게임의 기본적인 수학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나는 이기는 방법을 찾기로 결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4]


그는 UCLA로 돌아와 도서관에서 수학과 통계 연구 자료가 있는 구역으로 향했고, 자신이 카지노에서 사용했던 전략과 관련된 논문이 실린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이것이 그의 두 번째 커닝 페이퍼 준비의 시작이었다.


말이 커닝 페이퍼이지, 사실 이것은 이기는 전략을 찾아내어 첫 번째 커닝 페이퍼처럼 작은 종이에 적고, 기억하기 쉽도록 정리한 일종의 전략 카드였다. 그는 수학과 컴퓨터를 활용해 마침내 원하는 카드 카운팅(card counting) 방법을 찾아냈고, 새로운 전략 카드를 완성했다.[5] 이것이 그가 만든 두 번째 커닝 페이퍼이다. 지루하고 땀나는 연구 과정을 거친 결과였다.


두 번째 커닝 페이퍼를 완성한 뒤, 그는 처음보다 20배나 많은 판돈을 들고 다시 라스베이거스로 가서 테스트를 했다. 아쉽게도 결과는 또 돈을 잃었다. 그러나 그는 만족했다. 커닝 페이퍼를 보지 않고도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6]


커닝 페이퍼의 요체는 반드시 그것을 꺼내 보는 데 있지 않다. 그 내용이 이미 머릿속에 들어 있다면, 굳이 꺼내 볼 필요가 없다. 핵심은 그 커닝 페이퍼 속에 정확한 내용이 담겨 있는가이다. 실제로 소프는 판돈과 함께 손바닥 크기의 카드 형태 커닝 페이퍼를 들고 갔지만, 그것을 아예 사용하지 않기를 바랐다.[7]


소프는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나는 어떻게 시장을 이겼나》(A Man for All Markets: From Las Vegas to Wall Street, How I Beat the Dealer and the Market)라는 책을 집필했고, 카지노를 돌며 자신의 이론을 검증했다. 그가 지속적으로 게임에서 이기자, 카지노 측에서는 그를 알아보고 출입을 금지했다. 이후 그의 관심은 주식 투자로 옮겨졌고, 새로운 연구를 바탕으로 동료들과 투자 회사를 설립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에드워드 O. 소프 저 / 김인정 역 / 신진오 감수. 《나는 시장을 어떻게 이겼나》(2019). [사진=예스24 캡처]

 큰돈을 번 이후, 그는 UC 어바인(University of California, Irvine) 수학과에 거액을 기부했는데, 그 기부금은 반드시 수학교수의 급여와 연구비로만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8] 멋쟁이다.

소프를 흔히 퀀트 투자의 아버지라 부르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가 수행한 주식 투자는 현대적 의미의 퀀트 투자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현대의 퀀트는 ‘이길 확률’을 계산하지 않는다. 대신 ‘과거 데이터에서 반복적으로 관측된 통계적 편향’을 계산한다. 소프는 수학자였기 때문에 그의 투자는 확률론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다시 말해 그는 “주식의 확률을 계산하여 투자한 사람”이 아니라, “확률이 계산 가능한 금융 구조만을 선택하여 투자한 사람”이었다. 그는 주식 시장에서는, 카지노와는 달리, 이길 확률 자체를 계산할 수 없다고 보았다.[9]


주식 투자가 확률 게임은 아닐지라도, 여전히 커닝 페이퍼는 중요하다. 투자, 특히 가치 투자와 같은 전통적인 투자 방식에도 이길 수 있는 조건이 존재하며, 그 조건이 핵심이다. 이길 수 있는 조건을 머릿속에 외워 두거나, 복잡하다면 커닝 페이퍼를 만들어 손바닥에 숨겨 두어야 한다.


투자라는 게임에 처음 참여하는 초보 투자자들에게는, 손에 꼭 쥐고 있어야 할 커닝 페이퍼가 필요해 보인다. 어떤 매수 기준이나 로직을 사용하든, 손바닥 크기 정도로 요약된 간단하고 명료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소프의 이야기가 전해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주식 투자가 확률 게임은 아니지만, 요약된 기준과 명확한 원칙을 들고 투자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는 것이다.


2025년 10월 31일 기준, 국내 주식 거래 활동 계좌 수는 95,333,114개에 이른다.[10] 반면에, 코스피 지수가 처음으로 4,100을 처음 돌파한 날, 한 증권사의 주식잔고 보유자 중 54.6%가 1인당 평균 931만원의 손실이 발생하였다고 한다.[11] 이런 시대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 번 던져볼 만하다.


“혹시 당신은 에드워드 소프처럼 커닝 페이퍼를 가지고 주식 투자 테이블에 앉아 있습니까?”


아니, 어쩌면 다음 질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당신은 어떤 커닝 페이퍼를 가지고 주식 투자 테이블에 앉아 있습니까?”


[주석]

[1] 퀀트 투자(quant investing)는 수학과 통계를 기반으로 전략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투자하는 정량적인 투자법을 의미한다.

[2] 실제로 그 전략은 플레이어가 직면할 수 있는 수백 가지 상황을 다루고 있었다. 에드워드 O. 소프 저, 김인정 역, 《나는 어떻게 시장을 이겼나》 (A Man for All Markets: From Las Vegas to Wall Street, How I Beat the Dealer and the Market), ㈜이레미디어, 2019, 118면. 

[3] 위의 책, 121면. 

[4] 위의 책, 122면.

[5] 위의 책, 125~138면 참조. 이에 관해서는 윤진기, “시장에서 이론은 힘이 세다”, 버핏연구소, 2023.04.09, https://buffettlab.co.kr/news/view.php?idx=42560&mcode=m69cuf2 (2025.12.12); 

같은 글, 더밸류뉴스, 2023.04.13, https://www.thevaluenews.co.kr/news/175412 (2025.12.12. 검색)

[6] 앞의 책, 139면.

[7] 위의 책. 138면.

[8] 위의 책, 501~502면.

[9] 위의 책, 123면.

[10] “역대급 '불장'에 주식거래 활동계좌수 국민 1명당 2개꼴로”, 연합뉴스, 2025.11.04; “사천피 불장에 국민 1명당 2개꼴로 갖고 있는 ‘이것’…올해 900만개 늘어”, 매일경제, 2025.11,04. 4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주식거래 활동계좌 수는 9533만3114개였다. 지난해 연말 8656만8337개와 비교하면 올해 들어서만 876만4777개가 늘어난 것이다. 주식거래 활동계좌는 예탁자산이 10만원 이상이면서 최근 6개월간 한 차례 이상 거래가 이뤄진 위탁매매 계좌 및 증권저축 계좌를 말한다.(매일경제, 위의 기사) 

[11] “[팩트체크] 코스피 '불장'이라는데…개인 54%는 평균 931만원 손실 중”, 매일경제, 2025.11.10; “[팩트체크] 코스피 '불장'이라는데…개인 54%는 평균 931만원 손실 중”, 파이낸셜뉴스, 2025.11.10.


저작권자 Ⓒ 윤진기.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출처를 표시하여 내용을 인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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