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로 산다는 것>. 애널리스트 김영익 지음. 스마트 비즈니스 펴냄
- 쿠에의 공식 이란 게 있다. 프랑스 약사인 에밀 쿠에가 개발한 자기 확신이라는 간단한 처방이다. 쿠에는 이 법칙을 우연히 발견했다.
어느 날 한 손님이 의사 처방전도 없이 약을 사러 왔다. 쿠에는 당연히 거절했다. 그러나 손님은 한사코 약을 달라고 고집을 부렸다. 어찌나 손님이 고집을 부리든지 결국 쿠에는 속임수로 아주 약효가 뛰어난 약이라고 설명하면서 설탕 한 덩어리를 손님에게 주었다. 며칠 후 손님은 쿠에를 찾아와 고맙다고 인사했다. 쿠에가 처방해준 약 덕분에 나았다는 것이다. '위약효과' 로 불리는 이 유명한 치료법은 이렇게 탄생했다. 이 환자는 틀림없이 자기는 나을 수 있으리라는 자기 확신 덕분에 완치됐던 것이다. 말 한마디로 통증을 치료할 수 있다면 말은 사람의 성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쿠에는 연구를 시작했고, 그로부터 몇년 뒤 아주 간단한 공식 하나를 개발해냈다. 그것은 설탕 덩어리 대신 간단한 단어들로 만들어진 공식이었다. 이 공식은 전세계로 퍼져 나갔고, 수많은 사람들이 과거보다 한결 나아진 삶을 사는데 도움을 주었다.
"날마다 모든 면에서 나는 점점 좋아지고 이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쿠에의 공식이다.
- 살다 보면 늘 예상치 못한 복병들이 뒤통수를 치곤한다. 그러나 그러한 복병들의 공격조차 또 다른 기회로 변신시킬 수 있다.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를 세우고 있으면 길은 늘 새로 열리고 또 다른 세계로 나를 안내한다.
- 우리는 늘 선택을 하고, 그 시점에서는 최선이라고 생각하지만 지나놓고 보면 잘못된 경우가 허다하다.
- 수업 시간에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하지 못해 안달이었다. 그들은 어미 새가 주는 먹이를 받아먹는 새끼처럼 손을 들고 발표 기회를 잡으려 했다.
- 아서 밀러의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30년간 세일즈맨으로 일해온 주인공 윌리 로만은 이렇게 외친다. 오랜 세월 근무한 회사에서 매정하게 해고당하자 그는 아들에게 보험금을 남겨주기 위해 자살한다. 이 작품은 주인공 윌리로 대변되는 현대 직장인이다.
"어떻게 저한테 약속이 있으니 그만 가보라는 말을 하실 수가 있습니까? 저는 34년 세월을 이 회사에 바쳤습니다. 이제 저는 보험료를 낼 돈도 없습니다. 이렇게 포도 단물만 빼먹고 껍질은 내버려도 되는 겁니까? 전 사람이지 포도가 아니란 말입니다!"(윌리)
"윌리는 세일즈맨이었습니다. 세일즈맨에게 인생의 안전망은 없습니다. 그저 미소와 반짝이는 구두에 의존한 채 낯선 곳으로 내몰린 사람이지요. 사람들이 그의 미소에 화답해주지 않으면 딛고 서 있는 땅이 무너지는 겁니다. 아무도 이 사람을 비난해서는 안됩니다. 세일즈맨에게는 꿈이 있어야 합니다. 그 꿈은 자기 영역을 확보하는데서 어는 겁니다.(윌리)
- 헬런 켈러는 'Three days to see'(내가 만약 사흘동안 세상을 볼 수 있다면)에서 이렇게 썼다.
"앞을 볼 수 있는 사흘 동안, 첫날은 친구들과 가까운 동물들에게 바치고, 둘째 날은 인간과 자연의 역사를 공부하며, 그리고 마지막 셋째날은 현실 세계에서 사람들이 일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내일 갑자기 장님이 될 사람처럼 여러분의 눈을 사용하십시오."
- 김영익 애널리스트는?
전라남도의 깡촌 함평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 가정형편 때문이었다. 교회에서 중학교 검정고시 과정을 배웠다. “의자도 없어서 마룻바닥에 엎드려 배웠다”고 했다. 농고에 입학했지만 그만두고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학력을 취득했다. 전남대 경제학과에 들어간 때가 스물두 살, 서강대학교 석사과정을 마치고 사병으로 입대한 때가 스물아홉 살, 그리고 대신경제연구소에 입사한 것은 서른한 살 때였다.
입사 이후 지금까지 그의 출근 시간은 새벽 6시다. 술 마시고 새벽 2시에 들어가도 어김없이 새벽 4시에 일어난다. 소위 ‘아침형 인간(그의 표현에 따르면 농부형 인간)’의 표본인 셈이다.
그는 또한 증권회사 재직 중에 서강대학교에서 박사과정(야간대학원이 아닌 정식과정)을 졸업했다. 스카이(SKY, 서울대, 연대, 고대를 말함) 출신이 대부분인 증권가에서 몇 안 되는 ‘지방대 출신’으로서 차별을 느꼈지만, 그는 자신만의 특별한 열정과 노력으로 극복했다.
지난 2000년의 주가 급락, 9?11 테러 직전의 주가 폭락과 그후의 반등, 2004년 5월의 주가 하락과 2005년 주가 상승 등을 줄줄이 맞히면서 그는 여의도의 족집게 스트래티지스 트(strategist, 증권사 연구원 중 개별 기업이 아니라 주식 시장 전체의 흐름을 분석하고 전략을 짜는 사람)로 떠올랐다.
2006년 1월까지 주식 시장은 뜨겁게 달아오르면서 종합주가지수(KOSPI)가 사상 처음으로 1,400을 넘어섰고 대부분의 투자전략가들이 주가를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그는 2005년 말부터 “2006년 2분기에는 주가가 크게 하락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투자자들에게 계속해서 경고했다.
그는 언론사에서 펀드매니저들을 상대로 조사해 발표하는 ‘베스트 애널리스트’ 순위에 최근 5년 동안 연속해서 선정되었고, 대한민국 증권인상과 베스트 이코노미스트 부문, 스트래티지스트 부문에서 모두 1, 2위를 차지하는 프로 중의 프로로 자리 잡았다. 또한 이런 실력을 인정받아 2005년 투자전략실장에서 리서치센터장으로 승진했다. 동기들 중 가장 빠른 임원 승진이다.
대한민국 최고령 애널리스트가 되는 것이 그의 꿈이다. 예순 살이 넘어도 계속 공부를 하고 직접 자료를 쓰는 스티븐 로치(모건 스탠리의 유명한 이코노미스트)처럼 되는 것이 그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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