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1 8. 26.
워렌 버핏이 방한 기간에 남긴 이런저런 말들을 바탕으로 그가 어떻게 한국 주식을 골랐고, 지금은 어떤 한국 주식을 갖고 있을지를 생각해보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다 보니 버핏의 전기 <스노볼2>를 다시 뒤적여보게 됐습니다. 한국 주식에 관련된 부분이 나오는 군요. 저의 궁금증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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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어느 날, 버핏은 자기 주식 중개인으로부터 두꺼운 책 한권을 받았다. 전화번호부를 여러 권 포개서 묶어 놓은 것처럼 두꺼운 책이었다. 이 책에는 한국의 주식 목록도 들어있었다. 버핏은 그동안 전 세계의 경제 단위들을 훑으면서 저평가된 국가, 저평가된 채로 남들이 간과한 시장을 탐색하고 있었다. 그런 시장이 바로 한국에 있었다. 밤마다 그는 이 책의 한줄 한줄을 꼼꼼하게 줄치며 연구했다. 하지만 한국 시장의 여러 수치와 전문 용어가 낯설기만 했다. 그래서 전혀 다른 상업 문화를 표기하는 대신 새로운 기업 언어를 완전히 새로 배울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다른 책 한권을 따로 구해서 한국의 회계 방식에 대해서 중요한 사항들을 모두 파악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한국식 회계 속에 숨어있는 속임수에 넘어갈 확률을 줄였다. 이렇게 한국 주식 시장의 종목들을 완전히 파악한 뒤 분류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작업을 하면서 버핏은 그 옛날 그레이엄&뉴먼에서 그토록 원하던 회색 몇 재킷을 입고서 일하던 때를 생각했다.
지금이 그때와 똑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온갖 수치들로 가득 채워진 수백쪽의 회계 자료들을 파면서 버핏은 어떤 주식이 중요하고, 또 이 주식들이 어떤 양상을 갖고 있는지를 파악했다. 처음에는 한국 주식 시장의 수천개 목록을 갖고 작업했지만, 예전에 <무디스 매뉴얼>을 갖고 그랬던 것처럼 노트에 메모를 해가면서 버핏은 쓰레기 더미 속에 반짝이는 진주를 찾아 서서히 이 숫자를 줄여갔다. 그리고 마침내 이 목록의 숫자는 한층 단촐해졌다.
이제는 규격 용지에 다 들어갈 정도로 검토 대상 목록이 줄어들었다. 기것해야 스물 다섯개도 되지 않았다. 이 가운데는 세계적인 회사로 손꼽힐 만큼 규모가 큰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규모가 작았다. (P.S. 버핏은 한국 주식 시장의 1,800개 종목들을 하나씩 분석했군요. 그런데 보는 눈에 있어서 그런지 이 작업을 빨리 끝냈군요. 정황으로 봐서 몇개월만에 끝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걸 보십시오. 이것이 내가 하는 방식입니다. 원화로 표기돼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한국의 증권거래소에 가보면, 각국의 주식은 종목 기호 대신 숫자로 표시됩니다. 그리고 이것들을 모두 우선주가 아니면 영(0)으로 끝납니다. 우선주일 경우에는 5번을 클릭합니다. 2차 우선주는 6번이 아니라 7번을 클릭합니다. 밤마다 특정 시간대에 인터넷에 접속해서 중요한 사항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날 5대 최대 매수 증권사 혹은 매도 증권사가 어디인지 알 수 있습니다.
물론 한국에 있는 은행에 계좌를 개설해야 합니다.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나는 하면서 배우는 중입니다. 나에게 이건 마음에 드는 여자를 새로 한명 찾아내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회사들은 무척 우량한 기업들입니다. 게다가 싸기까지 하지요. 5년전(1999년께)보다 더 싼데, 사실 이 회사들의 자산가치(asset value)는 그때보다 훨씬 높습니다.
이 회사들 가운데 절반은 마치 포르노 영화 제목처럼 들립니다. 철강, 시멘트, 밀가루, 전기와 같은 기본적인 물품을 만드는 회사들입니다. 한국에서 차지하는 시장 점유율도 상당하고, 이런 상황은 가까운 미래에는 바뀌지 않을 전망입니다. 그리고 이 회사들 가운데 몇몇은 중국과 일본에 수출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여태 투자자들의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이 제분회사(대한제분)를 보십시오. 이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현금은 시장가치(시가총액)보다 많잖아요. 주가수익비율(PER)도 3배에 불과합니다. 많이는 살 수 없었습니다만, 꽤 샀습니다. (P.S. 버핏도 자산가치를 보는군요. 특히 현금 가치를 보는 것 같습니다. 선호하는 업종은 철강, 시멘트, 밀가루, 전기 이런 것들이군요. 그러면서 업종내에서 기반이 확고한 기업을 고르는 것 같습니다)
여기 또 다른 회사, 유제품을 생산하는 회사입니다. 내 개인 포트폴리오에 한국의 주식들을 포함시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외국 통화에 관한 전문가가 전혀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한국의 통화인 원화로 된 이들 주식을 갖고 있어서 마음이 아주 편안합니다.
이 주식들이 안고 있는 주된 위험, 그리고 이 주식들이 싼 이유는 북한이라는 존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위험이 맞습니다. 만일 북한이 남침한다면 전 세계는 지옥으로 변할 겁니다. 중국과 일본, 그리고 아시아 전체가 이 전쟁에 말려들 겁니다. 이렇게 될 경우 어떤 결과가 빚어질지는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북한은 머지 않아 핵무기를 손에 넣을 겁니다. 나는 북한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 가운데 하나라고 봅니다. 하지만 나는 중국이나 일본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이 북한이 남한을 핵무기로 공격하는 상황이 전개되도록 절대로 가만 두고 보지만은 않을 것이라는데 돈을 겁니다.
투자 할 때는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미래라는 건 언제나 불확실하니까요. 내 생각에 이 주식들은 앞으로 상당한 기간동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몇몇 주식은 좋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전체적으로 보면 틀림없이 괜찮습니다. 앞으로 몇년 동안 계속해서 이 주식을 갖고 있을 참입니다." 버핏은 새로운 게임 하나를 찾아냈다. 해답을 찾아야만 하는 새로운 수수께끼였다. 버핏은 한국의 주식들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다. 그러면서 그 옛날 소년 시절에 아크사벤 경마장에서 사람들이 모르고 잘못 버린 마권을 찾았던 그 열정으로 멋진 투자 기회를 포착하려고 눈을 반짝였다.
[대한제분 주가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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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핏이 한국 주식을 분석하고 매입한 과정을 정리해보면 이렇게 되는군요.
STEP 1 : 모집단을 가능한 넓게 잡는다. 대형주냐 중소형주냐 하는 식의 선입견을 갖지 않는다.(그런데 결과적으로 남는 것은 중소형주이다. 왜냐하면 저평가돼 있을 가능성이 높은 주식은 결국 중소형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투자 판단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한다.
STEP 2 : 이 모집단을 하나씩 분석해 투자 범위를 좁힌다. 우량하면서 싼 기업을 남겨둔다. 이때 해당 기업의 자산가치도 본다. 다시 말해 버핏이라고 해서 오로지 수익가치만 보는 게 아니며, 자산도 중요한 투자 가치의 하나다. 현금은 특히 중요한 자산가치이다.
STEP 3 : 이런저런 리스크를 따져본다. 시장이 생각하는 리스크가 합리적인지, 실제로 발생할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생각해본다. 투자에는 리스크가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받아 들인다.
STEP 4 : 주식을 매입하고 제 가격을 찾을 때까지 기다린다. 버핏의 방식으로 한국 주식 시장의 종목들을 다시 한번 분석해볼 생각입니다. P.S. 버핏은 거래량이나 시장 심리를 봤을까? Maybe not. 그가 당시 매입했던 한국 주식은 대한제분, 신영증권, 에스원, 기아차인데, 거래량이나 시장 심리를 봤다면 도저히 사지 못했을 종목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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