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기회의 시대’, 시작하라! 『인에비터블』(평점 ☆☆☆)
케빈 켈리(Kevin Kelly) 지음. 이한음 옮김. 청림출판. 2017년 1월
우리는 지금 이 시대를 '예측 불가능의 시대'이자 '위기의 시대'로 여긴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인공지능(AI)이 지진이나 야구 게임 속보를 '인간 기자'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전송하는 시대에 내 일자리는 10년 혹은 20년 후에는 어떻게 돼 있을까? 노트북으로 뭔가를 쓸 때마다 나는 형언하기 어려운 무력감과 공포감을 느낀다. 지금 나는 선택할 수 있는 게 사실상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미래 사상가인 케빈 켈리(Kevin Kelly)는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다. 그는 신간 '인에비터블 미래의 정체'에서 "지금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기회의 시대"라고 말한다.
그는 "후손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를 돌아본다면 "와, 그때 살았어야 했는데…." 할 것“이라며 ”지금처럼 더 많은 기회, 더 많은 열린 문, 더 낮은 장벽, 더 나은 보상이 있었던 적은 없었고, 그러므로 당신은 늦지 않았다"고 말한다(48 P)
그가 이런 주장을 하는 근거는 지금 이 시점이 인류의 존재 방식과 일상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최초의 지점이므로 무엇을 하든 효시가 되기 때문이다. 그는 독자들에게 "타임머신에 올라타서 30년 후의 미래로 가서 지금 우리가 세상을 보내는 이 시점을 돌아보는 상상을 해보라“고 조언한다. 그러면 2050년의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사용하는 가장 중요한 상품이나 서비스의 대부분이 2017년까지는 아직 발명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미래의 사람들은 가상현실(VR) 콘텍트 렌즈로 지구촌 어느 곳의 누구와도 실시간 대화를 할텐데 그런 것들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금 그 비즈니스에 뛰어들면 선구자가 된다
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우리의 경험칙과도 부합한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인 1994년, 저자 케빈 켈리는 맥도널드닷컴(mcdonald.com)이 아직 도메인 등록이 돼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비록 맥도날드 담당자가 도메인이 뭔지 몰라 이 도메인을 매각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당시 인터넷은 활짝 열린, 그래서 어느 것을 하든 최초일 가능성이 높았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정말 그럴까?
저자의 설명을 따라 가다보면 어느 순간 굳이 내가 무력감과 공포감에 휩싸여 있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저자의 말대로 지금이 오히려 기회의 시대라면 나는 지금 어디를 주목해야 하는걸까?
저자는 12가지 주제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되어가다(Becomning), 인지화하다(Cognifying), 흐르다(Flowing), 화면보다(Screening), 접근하다(Accessing), 공유하다(Sharing), 걸러내다(Filtering), 뒤섞다(Remixing), 상호작용하다(Interacting), 추적하다(Tracking), 질문하다(Questioning), 시작하다(Beginning)가 그것이다. 이는 이 책의 목차이기도 하다.
이들 12가지 목차를 읽다보면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현상들의 이면에 실은 심오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읽어내는 저자의 능력은 <통제 불능>
같은 이전의 책들에서도 드러나지만 이 책에서는 압권이라 할만하다.
'화면보다'편에서 그는 '책'(Book)이 '화면'(Screen)으로 대체되고 있다고 말한다. 화면이란 스마트폰, 노트북, PC의 ‘스크린’을 말하는데, 이용자들은 텍스트를 읽는다는 점에서는 책 읽기와 동일한 행동을 하고 있지만 화면을 손으로 눌러서 자기가 원하는 것으로 이동해가면서 텍스트를 흡수한다는 점에서 물성 자체가 다른 일을 하고 있다고 켈리는 말한다.
"책 읽기는 한 내용을 각주까지 찾아보도록 자극함으로써, 우리의 분석 기능을 강화한다. 그렇지만 화면 보기는 한 개념을 다른 개념과 연관 짓고, 매일 표출되는 수천가지의 새로운 생각에 대처하게 함
으로써 빠른 패턴 형성을 자극한다. 화면은 실시간 사고를 부추키며, 설득 대신 행동을 자극한다."(158 P)
저자는 현대인들이 스마트폰 사용으로 '화면보기형 인간'으로 변모되고 있기 때문에 책 읽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기 시작했다며 책의 미래를 어둡게 보고 있다. 책이 이전의 구술사의 지위를 빼앗고 권위의 왕관을 썼지만 이제는 그 왕관을 물려줄 때가 됐다는 것이다. 출판계 종사자라면 귀담아들어야 할 부분이다.
신기술에 올라탄 인류의 최종 종착지는 어디일까?
저자는 "인류의 진정한 혁명은 모든 사람들이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개인용 작업 로봇을 가질 때 벌어질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그는 농부를 사례로 든다.
"미래의 농사일은 대부분 로봇이 한다. 당신의 로봇 일꾼은 흙에 있는 아주 영리한 탐지기가 지시하는 대로 바깥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제초, 해충 방제, 수확 등의 일을 도맡아할 것이다. 농부로서 당신의 새로운 일은 농사 시스템을 감독하는 것이다. 어느 날을 다양한 토마토 품종 중 어느 것을 심을지 조사하는 일을 하고, 다음 날은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고, 그 다음날은 고객 정보를 갱신하는 일을 한다. 로봇은 정례화할 수 있는 나머지 모든 일을 수행한다.(50P)
로봇이 인간의 거의 모든 업무를 대신하는 세상에서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런 미래에는 인간을 위한 일자리가 있기나 한 걸까?
이 문제에 해대 저자는 낙관적이다. 그는 "200여년전 산업화가 닥치면서 미국의 농부는 경제활동인구의 70%에서 1%만 남고 사라졌지만 대체된 노동자는 멍하게 가만히 있지 않았고, 전혀 새로운 분야에서 일자리를 찾아냈다"면서 "우리의 미래도 그러할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신기술이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질문까지 던지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지구의 어디에서 어느 디지털 화면을 통해서든 100만 가지 방법으로 분산 지능에 접속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말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이 합성 지능은 인간
지능(인간이 과거에 배운 모든 것과 현재 온라인 상태에 잇는 모든 사람)의 조합이므로, 그것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꼬집어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기억일까? 아니면 교감을 통한 합의일까? 우리가 그것을 검색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것이 우리를 검색하는 걸까?“(53 P)
“인간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나는 우리의 첫 번째 답은 이러할 것이라고 믿는다. 인간은 생물학이 진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지능을 창안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다. 우리 일을 다르게
생각하는 기계를 만드는 것, 외계 지능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사실상 AI를 AA(Atrificial Alien)이라고 해야 한다(77)
저자의 낙관주의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덮고 나면 이제부터 벌어지는 세상 변화에 단단히 준비해야겠다는 다짐을 할 수 밖에 없다. 곧 들이닥칠 변화의 범위와 깊이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 책의 곳곳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예측한다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확실한 것은 불가능해보였던 것이 현실로 등장하는 빈도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놀라지 마시길….
마음 단단히 먹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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