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젠슨 황 생각하는 기계'. 스티븐 위트 지음. 백우진 옮김. 2025. 5. 26.
PS. 이 책은 젠슨 황의 사실상 유일한 공식 전기이다.

◆ 검은 가죽재킷 고집하는 이유는 '시간 절약' 때문
-젠슨 황이 언제나 입고 다니는 검은색 가죽 재킷은 1,200만원(한화)짜리다. 젠슨 황은 이 검은색 가죽 재킷을 약 15벌 갖고 있다. 대부분 이탈리아 브랜드 맞춤 가죽 재킷이며 행사마다 약간 다른 디자인을 착용한다. 자세히 보면 지퍼 위치, 카라 모양, 가죽 질감이 조금씩 다르다.
검은색 가죽 재킷을 고집하는 이유를 묻는 기자들 질문에 그는 "매번 옷을 고르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답한 적이 있다. 그에게 시간은 가장 소중한 자원이다. 젠슨 황과 비슷한 이유로 같은 옷을 입는 CEO는 종종 발견된다. 마크 저커버그는 회색 티셔츠, 스티브 잡스는 검은 터틀넥이다. 이는 그들을 상징하는 ‘시그니처 패션’ 이다.
-엔비디아에 입사하기는 대단히 어렵지만 일단 입사하면 평생 근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짤리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젠슨 황은 인연을 중시한다. 한번 만난 사람은 반드시 기억한다.
-젠슨 황이 게임용 GPU 개발에 전력질주하던 시기에 어느 누구도 이것이 AI시대의 핵심 부품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했다. 당시 삼성전자가 HBM 사업에 철수한 것은 이상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젠슨 황은 치밀한 분석을 거쳐 게임용 GPU가 미래의 꽃이 될 것임을 확신했다.
-30대의 젠슨 황은 업계에서 변덕스러운 인물로 여겨졌다. 그는 거창한 선언을 했지만 성과로 연결되지 않았고 자주 사업 전략을 바꾸었다. 1999년 엔비디아가 상장할 당시 그의 나이 36세였고 그의 판단력과 성숙도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가 불같이 화를 낸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오랜 기간 동안 젠슨 황과 엔비디아에 대한 평판은 좋지 않았다.
"젠슨 황은 폭군이다" "회의중에도 직원들에게 소리지르며 몰아세운다""엔비디아는 노동 착취 공장이다"는 소문이 퍼졌다.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비전가였다. 그리고 타고난 리더였다. 젠슨 황은 팔로알토의 변호사 짐 게이더 사무실을 찾아가 법인 설립을 요청했다. 짐 게이더는 훗날 "나는 이 사람들(젠슨 황, 커티스 프리엠, 크리스 말라초스키)이 사무실을 나서기 전에 그들을 붙잡아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회고했다.
-학습하는 CEO는 탁월해진다. 젠슨 황의 사무실에는 경제경영서가 가득 차 있었다. 책이 쌓이고 또 쌓였다. 젠슨 황은 문학서, 대중서는 거의 읽지 않았다. 그렇지만 경영서적에 관한한 그는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었다.
-젠슨 황의 애독서는 크리스텐슨이 쓴 '혁신 기업의 딜레마'이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고객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 옳을 때가 있다. 때로는 이윤이 적고 성능이 낮은 제품이 투자하는 것이 옳을 때가 있다"고 말한다.
-소비자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소비자는 피처폰을 쓰면서 불편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스티브 잡스가 스마트폰을 내놓자 그때서야 피처폰이 불편하다고 느꼈다.
◆ 설거지 대만 소년 -> 세계 최고 CEO
-젠슨 황은 1963년 대만 타이난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황런쉰(Huang Jen-Hsun)이다. 1972년 부모는 더 나은 교육을 위해 9살 젠슨 황과 형을 미국으로 보냈다. 여기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그들이 도착한 학교는 명문 기숙학교가 아니라 켄터키주에서 문제 청소년들이 다니는 학교였다. 실제로는 소년원에 가까웠다. 이곳에서 그는 또래보다 훨씬 어린 학생이었고 동양인 소수자였다. 그래서 일상적으로 괴롭힘을 당했다.
10대 시절 그는 가족을 돕기 위해 식당에서 일했다. 식당 설거지(dishwasher), 웨이터 보조 등을 했다. 하루 종일 접시를 닦으며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평생 접시를 닦을 것인가, 아니면 내 삶을 바꿀 것인가.”
이 경험은 이후 그의 강한 근성(work ethic)을 만들었다.
-젠슨 황의 고교 시절 성적은 최상위권이었다. 그는 월반을 했다. 내셔널 아너 소사이어티에 선발됐다. 집중력이 탁월했다. 그는 하버드대에 합격할 수도 있었지만 오리건주립대를 졸업했다. 오리건주립대는 가장 높은 순위의 공립학교는 아니었다. 그는 "그냥 가장 친한 친구를 따라갔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한 친한 친구는 베드하이덴으로 오리건주립대 동문 집안이었다.
-오리건주립대 재학중 젠슨 황은 부인 로리 밀스(Lori Mills)를 만났다. 여학생들 가운데 가장 매력적이었다. 전형적인 서구 금발 미녀였다. 젠슨 황은 로리 밀스에게 첫 눈에 반했고 반드시 결혼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젠슨과 로리는 1980년대 중반 친구들 가운데 가장 먼저 결혼했고 가장 먼저 집을 장만했다. 이들 부부는 끊임없이 일했고 여행도 거의 다니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들과 거의 교류하지 않았다. 장남(Spencer Huang), 장녀(Madison Huang)를 두었다.
젠슨 황은 어느 인터뷰에서 “내가 젊었을 때 모든 것을 걸고 창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로리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젠슨 황의 첫 직장은 AMD였다. 2년 근무 후 LSI로 이직했다. 두 직장 모두에서 젠슨 황은 탁월한 성과를 냈다.
-1993년 그는 작은 식당에서 두 동료와 함께 회사를 창업했다. 실리콘밸리의 어느 작은 레스토랑이었다. 당시 목표는 “컴퓨터 그래픽을 혁명적으로 바꾸자”였다.
-젠슨 황은 회사 이름을 짓지 않아서 일단 NV(New Venture라는 뜻)라고 서류에 적었다. NV를 의미하는 단어들을 찾아보니 Nvision이 있었는데 재활용 화장지를 생산하는 어느 기업이 이 회사명을 사용하고 있었다. 차선으로 Nvidia를 선택했다. 이는 질투(invidia)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그는 여러 차례 망할 뻔한 위기를 겪었다.
-엔비디아 설립 2개월 후 '쥬라기 공원'이 개봉했다. 이 영화는 처음으로 컴퓨터 그래픽 이미지와 실사 장면을 통합했는데, 이를 구현하는데 어마어마한 컴퓨팅 파워가 소모됐다. 티라노사우르스가 나무를 부수고 나오는 3초 짜리 장면을 완성하는데 애니메이터들이 10개월을 작업했다. 여기서 그는 완벽하게 실패했다. 자금난, 직원 대량 해고 직전까지 갔다.
-젠슨 황은 나중에 “엔비디아가 살아남은 것은 거의 기적이었다”라고 말했다.
-해고를 하지 않는 최선의 방법은 채용을 철저하게 하는 것이다.
-젠슨 황은 가족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단 한명도 엔비디아에 채용하지 않았다. 대신 부동산을 나눠주었다.
-인생의 가장 큰 리스크는 리스크를 대면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여러분이 매우 큰 고통을 겪기를 바란다. 그것이 성공의 가장 좋은 준비이기 때문이다."
-“나는 매우 어려운 일을 겪었기 때문에 회사를 운영하는 것이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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