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지음. 쌤앤파커스. 2017년 5월.
지금 나는 그간의 내 인생에서 몇 안되는 절체절명의 도전을 맞고 있다. 사소한 사건 하나가 일파만파로 번져 나가면서 한 사람의 인생을 뿌리째 뒤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절감하고 있다.
도대체 이 도전을 나는 어떻게 수습하고 극복해야 할까? 행운의 여신은 언제 내게 미소를 지을 것인가?
이런 복잡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서울 강남 교보문고에 들렀다가 눈에 확 들어온 책이 김동연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자전 에세이 '있는 자리 흩트리기'였다.
이 책은 나를 사로 잡았다. 이 책에는 지금의 내가 가장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 것, 다시 말해 '도전과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에 대한 답변의 실마리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다. 출간 2개월만에 10쇄를 찍은 것을 보면 나처럼 '위기 돌파'라는 주제에 매몰돼 있는 한국인이 많다는 생각도 들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저자는 '흙수저'에서 일국의 부총리로 입신한 인물이다. 그는 11세에 부친을 여의고 서울 청계천 판자촌과 경기 광주 천막집을 전전했다. 어머니, 남동생, 여동생을 책임져야 하는 장남으로 끼니를 걱정하면서 지내다가 덕수상고를 간신히 졸업하고 한국신탁은행에 입행했고, 이후 행정고시와 입법고시에 동시 합격해 1983년 26세에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공직에 입문한 것이 지금의 입신의 출발이었다.
나는 그가 환경은 어려웠지만 시도하는 것마다 승승장구해 오늘의 길을 걷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렇지 않았음을 알게 됐다.
그는 행정고시에서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불합격한 적이 있다고 털어놓고 있다.
"행정고시 2차 시험장에서 나는 자신있게 답안을 써내려갔다. 검토까지 마치니 종료 타종소리가 났다. 내심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끝내고 시험장 바깥에 나가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 과목인 행정학 시험을 보기 위해 들어왔는데 고사장에 난리가 나 있었다. 내 답안지가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내가 볼펜과 연필을 가방에 넣으면서 무심코 답안지까지 가방에 넣고 퇴실한 것이었다. 자신있게 답안지 작성을 하다 흥분감으로 실수를 한 것이다." (83 P)
그의 행위는 부정 행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시험관들은 초안지 내용을 보고 고의가 아닌 실수라고 판정했으나 그의 응시 자격을 박탈했다. "시험장소인 한성대 비탈길을 울면서 내려왔다"는 대목을 읽으면서 당시 그가 어떤 심경이었는지에 공감이 갔다. 직장(은행원) 생활과 고시 공부를 병행하면서 정말 바쁘게 열심히 지낸 결말이 단 한번의 실수로 허무하게 무너진 것이다.
그런데 저자의 다른 점은 이때부터이다.
그는 자신의 내면과 대화를 한 끝에 모든 결과가 전적으로 자신의 잘못이자 실수였음을 인정했다고 한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생각해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실패 자체보다 실패를 했을 때의 반응이다. 긍정적인 반응의 첫발은 실패를 오롯이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실패로 인한 결과는 내 것이고, 실패의 원인은 내 책임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남 탓을 해서는 안되고, 처한 상황이나 환경을 원망해서도 안된다."(89 P)
그러자 그는 "거짓말처럼 다시 시작하자는 생각이 들었고, 실수를 한 것도 내 실력이려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책상에 책을 읽을 순서대로 꽂고, 다시 책을 잡았다"고 밝히고 있다(85 P)
이런 노력으로 그는 이듬해인 1982년 행정고시에 다시 도전해 공직의 길로 들어섰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실수로 인해 위기에 빠졌다면 다시 딛고 일어나야 한다는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며 "삼키기 힘든 쓴 실패를 딛고 일어서면 그 실패는 '위장된 축복'"이 된다"고 조언하고 있다.(89 P)
또, 그는 젊은 시절 내내 자신이 '학력 컴플렉스'에 시달렸음을 솔직히 털어놓고 있다. 그런데 이 도전을 극복해가면서 그는 오히려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상고를 졸업하고 은행에 입행하면서 곧바로 '학력의 벽'을 실감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열심히 일했고 나름 인정도 받았지만 '대학도 안나온 친구'라는 말을 숱하게 들었고, 100미터 달리기 시합에서 50미터즘 뒤처진 출발선상에서 뛰는 기분이었다"며 "출발선이 너무 달라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히고 있다(59 P).
이를 극복하기 위해 주경야독해 야간대(국제대)를 졸업하고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하지만 그에게 '학력의 벽'은 여전했다.
그가 솔직히 털어놓는 일화를 살펴보면 당시 학력 차별이 얼마나 심각했는지가 엿보인다.
1983년 그는 고시에 합격하고 사무관 발령을 받아 동기들과 함께 선배들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 상견례 자리에서 선배 사무관이 "학교는 어디 나왔느냐?"고 물었고, 저자는 대답을 하고 방을 나왔다. 그런데 방을 나가는 저자의 뒤에서 그 선배 사무관이 "요새는 별 희한한 학교 나온 얘들도 시험에 붙어 여기까지 오네"라고 말하는 것이 들렸다고 한다. 순간 저자는 "얼굴이 불데 덴 듯 뜨거워졌다"고 밝히고 있다(189 P)
심지어 경제기획원 동료들에게 자신이 나온 대학을 말하면 "그런 대학도 있나요?"라고 되묻기 일쑤였다고 한다(120 P). 경제기획원은 자타가 인정하는 엘리트 조직이었으니 저자가 얼마나 학력 콤플렉스에 시달렸을지가 짐작된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도전을 열심히 공부해 외국의 명문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으면서 극복해나간 것으로 보인다. 이런 노력이 오늘의 그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힘든 일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강렬한 '회복 탄력성'으로 튀어 오르면 원래 있던 위치보다 더 높이 올라간다. 회복 탄력성을 키우기 위해서 필요한 덕목은 뭘까?
저자의 경험을 살펴보면 그것은 자기 통제력인 듯하다. 이는 힘든 상황에서도 자기의 감정과 행동을 통제해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자 어려움이 닥쳤을 때의 부정적인 감정이나 화를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꾸는 능력을 말한다.
우리의 뇌는 합리적이지 않으며 불안이라는 감정에 익숙해있으면 실제보다 훨씬 걱정과 불안을 느낀다.. 반대로 우리의 뇌가 행복이라는 감정에 길들여 있으면 기분 좋은 일이 발생하면 훨씬 크게 반응한다. 감정은 통제될 필요가 있다.
'하늘이 장차 어떤 사람에게 큰 일을 맡기려고 하면 반드시 그의 마음과 뜻을 괴롭게 하고, 근육과 뼈를 깎는 고통을 주고, 몸을 굶주리게 하고 그 생활을 빈곤에 빠뜨리고,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한다. 이것은 마음을 흔들어 참을성을 길러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일을 능히 감당하게 하기 위함이다.'
도전에 맞닥뜨렸다면 ‘맹자’의 '고자장하'(告子章下)를 암송하면서 위안과 힘을 얻는 것도 방법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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